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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사원서 '가전유통 큰손'으로…다이슨 들여와 매출 2000억 이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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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의 첫 직업은…
국내 최대 수입가전 유통社 게이트비젼 김성수 대표

청풍 청정기 배달사원으로 출발
입사 3년 만에 부인과 함께 창업
브라운·내쇼날 등 총판사업 시작

배달하다 만난 거래처 사장 덕에 부도위기 극복하고 재기 성공
유럽서 다이슨의 상품성 발견…다른 소형가전 포기하고 '올인'



[ 전설리 기자 ]
요즘 미디어에서 사라진 단어가 있습니다. ‘입지전적(立志傳的)’이란 말입니다.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게 그만큼 어려워진 시대 탓이겠지요. 그래서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사업을 일군 기업인을 만나면 그 삶 자체가 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이룬 성취가 크든 작든 간에 말이지요. <사장님의 첫 직업은…>이란 코너를 통해 그들의 삶 일부라도 기록하려 합니다. 아마 많은 중소기업 사장님들의 첫 직업은 ‘공돌이’였을 것입니다. 산업화 시대였으니까요. 영업사원도 많습니다. 영업은 ‘창업과 경영’에 필요한 많은 것을 가르쳐주기 때문이겠지요. 청풍 공기청정기 배달로 시작해 다이슨을 들여와 2000억원대 회사를 일군 김성수 게이트비젼 대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소형 가전 도매업을 하던 김성수 게이트비젼 대표는 2009년 결단을 내렸다. 다른 가전 도매는 모두 접고, 영국 다이슨 국내 총판을 따는 데 올인하기로 했다. 직원들은 반대했다. 소형 가전 도매업으로 안정적으로 연 매출 300억원 정도를 올리고, 사옥도 마련했는데 굳이 모험을 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얘기였다. 그때만 해도 다이슨은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브랜드였다.

맨손으로 창업해 여기까지 온 김 대표는 자신있었다. 시장 조사를 위해 해외 유명 백화점을 둘러보면 다이슨 제품이 가전 매장에서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디자인이 독특하고, 품질도 좋았다. 가격이 비싼 것은 오히려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김 대표는 “경제 위기 때는 오히려 가장 비싼 제품이 잘 팔린다”며 밀어붙였다. 이 결단으로 게이트비젼 매출은 연 2000억원대까지 늘었다.

배달사원서 가전 큰손으로

게이트비젼은 국내 최대 유럽 가전 수입업체다. 영국 다이슨 주요 제품과 영국 화이트나이트 건조기, 스위스 로라스타 다리미, 이탈리아 이메텍 온열매트 등을 독점 수입하거나 총판을 맡고 있다.

회사를 창업한 김 대표는 1998년 공기청정기업체 청풍에 입사,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회사는 기술이 없는 신입사원에게 배달 일을 시켰다. “배달이라니…”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다녀야 했다. 외환위기로 형은 은행을 그만둬야 했다. 부모님은 직업이 없었다. 그는 한 가지 결심을 했다. ‘3년 내 회사를 차리고야 말겠다.’

세운상가 테크노마트 등으로 열심히 제품을 실어 날랐다. 반 년 뒤 영업사원이 됐다. 김 대표는 “배달하러 가서 자꾸 물건을 팔고 오니까 영업사원을 시켜줬다”고 했다. 회사 생활이 안정돼 갔다.

하지만 안주하지 않았다. 입사 3년째 되는 2001년 10월 사표를 던지고 누리통상(현 게이트비젼)을 설립했다. 직원은 김 대표와 부인 단 두 명뿐. 거실을 창고로 썼다. 첫 번째 대박 난 제품은 청풍의 경쟁사이던 수피네 공기청정기였다. 김 대표는 홈쇼핑을 통해 제품을 팔았다. 성공이었다. 몇 달 지나자 회사에 돈이 쌓이기 시작했다. 사업을 키우는 것은 기업인들에게 본능에 가깝다.

김 대표는 이 돈으로 브라운 내쇼날 파나소닉 등 수입 소형 가전과 국내외 공기청정기, 커피자판기 등 총판 사업을 시작했다. 사회 변화와 함께 급성장하는 품목이었다. 사업에 집중한 것이 그에게 시장의 변화를 읽는 능력을 가져다준 듯했다.

유통망을 뚫다

어려움도 있었다. 회사 설립 초기인 2002년. 선풍기 2400대를 주문했는데 중간 유통업자가 대금만 받고 사라져버렸다. 갑자기 2억원 넘는 현금이 사라지자 결제를 못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 소식을 들은 이모 사장이 만나자고 연락해 왔다. 세운상가에서 사업을 하는 이 사장은 청풍에서 배달하던 시절부터 김 대표를 눈여겨봤다.

이 사장이 주문하면 김 대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즉시 물건을 갖다 줬다. 신속한 일처리와 근면성에 이 사장은 “뭘 해도 될 친구”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가 뭔가를 내밀었다. 5000만원짜리 마이너스 통장 두 개와 인감이었다. “당신은 100억원짜리 경험을 한 거야”라며 다시 해보라고 했다. 위기를 극복한 밑천은 사람이었다.

사업이 궤도에 오르자 김 대표는 더 많은 해외 제품으로 눈을 돌렸다. 세계적인 가전 전시회를 찾았다. 그냥 둘러보는 게 아니었다. 독일 전시회에 가면 통역을 구해 전시회장뿐 아니라 현지 공장 등도 살펴봤다. 몇몇 업체는 직접 찾아가 한국 총판을 달라고 했다. 김 대표는 “문전박대하던 유럽 업체들도 매년 찾아가 얼굴 도장을 찍으니 결국 만나줬다”며 “거래를 튼 비결”이라고 했다.

해외에서 제품을 가져다 홈쇼핑, 온라인 등에서 팔았지만 한 가지 숙제가 남아 있었다. 대형 오프라인 채널이 없었다. 2003년 일이 풀렸다. 영업을 하다 이랜드가 뉴코아백화점을 인수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영업사원 출신의 촉이 발동했다. “기회다.”

수소문 끝에 이랜드의 인수 책임자를 알아냈다. 담당자는 매일 새벽 6시에 만나자고 했다. 회의 시간은 고작 10분이었다. 매일 만나면서 이랜드그룹이 갖고 있는 매장에서 제품을 팔게 해달라고 설득했다. 결국 뉴코아백화점과 2001아울렛, 까르푸 입점에 성공했다. 성장의 발판이 됐다. 지금도 게이트비젼의 강점 중 하나가 강력한 유통망이다.

전략 채널·마케팅 노하우가 경쟁력

2009년 판매를 시작한 다이슨은 대박이 났다. 이는 다양한 마케팅의 결과였다. 2013년 가전업계에서 처음으로 1 대 1 카카오톡 상담 서비스를 도입했다. 김 대표는 “제품이 아무리 뛰어나도 누가 어떻게 판매하고 관리하느냐에 따라 브랜드 위상이 달라진다”며 “20년 가까이 축적한 유통 채널과 마케팅 노하우가 게이트비젼의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또 하나 김 대표가 강조하는 게 있다. 그는 “품질 제일주의 원칙으로 만든 제품만 판매하는 가전 유통업체로 키우고 싶다”며 “화이트나이트 건조기, 로라스타 다리미, 이메텍 온열매트는 모두 유럽에서 대를 이어 장인정신으로 생산하는 제품”이라고 말했다.

경영철학을 묻자 김 대표는 “직원이 행복한, 정년이 없는 회사”라고 답했다. 스위스 로라스타를 벤치마킹했다. 그는 “직원의 행복을 최우선에 두고, 직원들과 이익을 나누며 일하고 싶을 때까지 언제까지나 일할 수 있게 해주는 로라스타의 따뜻한 기업문화가 인상 깊었다”고 했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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