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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관계발전 善意'는 북핵폐기 담보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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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개선과 경협 속도 내려는 정부
세컨더리 제재에 치명상 입을 수도
국제사회 제재행보 벗어나선 안돼"

조영기 < 한선재단 선진통일연구회장, 국민대 초빙교수 >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지난달 29~30일 방한해 한국의 통일·외교·안보 관련 핵심인물을 모두 만났다. 불과 1주일 전 워싱턴 협의 후의 ‘긴급한 서울 방문’이었고, 외교·안보 책임자보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먼저 만난 것도 이례적이었다. 그래서 비건 대표의 방한 목적은 단순히 이견 청취 차원이 아니라 한·미 간 긴급한 현안 조율을 위한 것이라는 점이 암시됐다.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현안은 ‘선(先) 남북관계 발전’에 속도를 높이려는 한국과 ‘선 북핵폐기’에 역량을 집중하는 미국과의 노선 차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남북관계 발전을 통해 비핵화를 이끌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최근 정부는 대북제재의 경계선 위에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열었고, 남북 도로·철도연결 착공도 준비 중이다. 이를 계기로 남북관계를 되돌릴 수 없는 상태로 진전시켜 ‘한반도 신경제지도’를 완성하겠다는 속내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남북관계 발전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완화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그래서 정부는 5·24 조치 해제에 대한 여론을 타진했었고, 지난 9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ASEM(아시아유럽정상회의)에서는 문 대통령이 “대북제재를 완화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읍소도 했다.

반면, 미국은 완전한 북핵폐기(CVID)가 달성될 때까지 국제공조의 틀 속에서 대북제재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비핵화 협상이 오래 걸려도 상관없다”며 협상의 장기화 가능성에 대비하면서도 국제공조 아래 대북제재 강화 행보를 지속하고 있다. 미국의 제재강화 행보는 대북 독자제재의 횟수와 대상에서 알 수 있다. 올 들어 대북제재 횟수는 9차례로 지난해의 8차례를 넘어섰고, 개인과 기관 등 제재대상도 117건으로 지난해 124건에 근접해 있다. 특히 올해는 북한의 해상활동을 겨냥한 제재가 많았다. 중국, 러시아 국적 등 선박 40여 척도 제재대상에 포함됐다.

미국 재무부는 ‘9·19 평양공동선언’ 직후인 20~21일 국내 7개 은행과의 대북제재 관련 전화회의에서 “(대북제재 위반과 관련해) 불필요한 오해를 야기하지 말라”고 우려를 드러내면서 “예외는 없다(exemption zero)”는 경고 메시지도 보냈다. 이는 남북관계 발전의 과속을 경고한 것이다. 특히 미 재무부가 북한 관련 기관·개인 신상정보란에 ‘세컨더리 제재 주의(secondary sanctions risk)’라는 문구를 최근 추가한 것도 주목해야 한다. 세컨더리 제재는 미국의 독자적 제재로 ‘세컨더리 보이콧’과 같은 효력이 있다. 결국 한국의 은행들은 북한과의 거래에 신중하지 않으면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또 유엔안보리 결의안 2397호(2017년 12월22일)는 모든 회원국들에 제재이행의 ‘강제성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물론 북핵폐기 진척 정도에 따라 제재 예외의 유연성이 발휘될 수는 있다. 정부의 ‘선 남북관계 발전, 후 북핵폐기’는 ‘강제성 의무’보다 ‘예외의 유연성’에 매달린 구도다. 이 구도는 북핵폐기 가능성도 지연시키고 한·미 동맹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것임이 분명하다.

비건 대표의 방한으로 그간의 한·미 갈등을 해소할 ‘워킹그룹’이 마련됐다. 워킹그룹은 ‘비핵화 노력과 제재 이행, 유엔 제재를 준수하는 남북 간 협력에 대한 긴밀한 조율을 강화’하기 위한 틀이다. 당연히 워킹그룹은 완전한 북핵폐기의 실질적 방안이 마련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북핵폐기와 관련해 정부는 ‘우리의 선의에 북한이 선의로 행동할 것’이란 착각에 빠져 행동했다. 이젠 대북제재가 북핵폐기의 평화적 수단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남북관계 발전과 북핵폐기 간 우선순위를 조정해야 한다. 그래야 핵 없는 한반도 평화정착의 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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