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재포럼 2018 - 미래를 여는 도전
■ 기조연설 - 이리나 보코바 前 유네스코 사무총장
선천적 인종차별주의자 없어
단순한 지식·기술 전달하기보다
인권과 민주주의 교육 힘써야
과거사 문제로 대립하는 동북아
佛·獨 '공동 역사교과서' 참고할 만
[ 오형주 기자 ]
기술의 발전과 세계화는 빠른 속도로 전 지구를 하나의 사회로 연결시켰다. 과거 지역적 분쟁에 국한됐던 종교·인종 간 갈등과 이에 따른 극단주의적 테러 역시 모든 국가가 나서 함께 해결해야 할 글로벌 이슈로 부상했다. 인류가 직면한 이 같은 과제를 극복하는 데 교육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리나 보코바 전 유네스코 사무총장(사진)은 6일 “처음부터 인종차별주의자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이날 서울 광장동 그랜드워커힐호텔에서 열린 ‘글로벌 인재포럼 2018’ 기조강연에서 “극단주의 부상을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학교 교실에서의 세계시민교육”이라고 강조했다. 강연 주제는 ‘평화롭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세계시민교육’이었다.
인문학·예술소양 갖춘 세계시민 양성
불가리아 외교관 출신인 보코바 전 총장은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간 유네스코 사무총장을 지내는 등 국제무대에서 오랫동안 활약한 대표적 여성 리더로 꼽힌다. 그가 사무총장으로 재임 중이던 2015년 5월 유네스코는 인천 송도에서 ‘세계교육포럼’을 열고 “모두를 위한 포용적이고 평등한 양질의 교육을 평생 제공하자”는 취지의 선언문을 채택했다. 이는 같은 해 8월 유엔 총회가 채택한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에도 반영됐다.
보코바 전 총장은 그동안 수차례 한국을 방문하면서 한국의 경제·사회 발전상에 깊은 감명을 받았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넬슨 만델라는 ‘교육이야말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강조한 바 있다”며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선 한국을 보면 교육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기술 발전이 전 지구를 하나로 연결하고 있는 시대의 교육은 과거의 교육과는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 보코바 전 총장의 지론이다. 그는 “국경이 더 이상 무의미해진 상황에서 글로벌 시민의식은 곧 다른 나라 사람에 대한 책임 의식을 뜻한다”며 “21세기 교육은 단순한 지식이나 기술이 아닌 서로 다른 문화 간 존중과 관용을 가능하게 하는 인권과 민주주의 교육에 힘써야 한다”고 역설했다.
세계시민교육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 보코바 전 총장은 “세계에 대한 비판적 사고와 다른 국가·지역에 대한 이해능력은 물론이고 인류애와 소속감, 가치 공유와 책임, 공감과 연대 등 사회감성적 영역을 포괄한다”며 “이는 인류가 나아갈 길인 ‘지속가능한 개발’에 밑바탕을 제공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또한 보코바 전 총장은 “인문학과 예술이 세계시민교육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며 인문학과 예술 교육에 각별한 관심을 나타냈다. 그는 “최근 많은 국가의 교육 제도가 점점 인문학이나 윤리, 예술 등을 경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어 우려스럽다”며 “책 한 권이 닫혔던 젊은이의 마음을 열어주듯이 인문학과 예술은 더 나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창의성을 촉발시킨다는 점에서 세계시민교육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설명했다.
“동북아, ‘역사 공유’로 해법 찾아라”
보코바 전 총장은 북한 핵 문제 해결과 남북한 관계 개선에 대해서도 세계시민교육의 접근법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남북한이 공통된 역사와 뿌리 그리고 문화유산을 공유하고 있다는 부분에서 교육 영역이 기여할 점이 적지 않다고 본다”며 “우선 남북 간 대학생 교환 프로그램 등을 통해 공유하고 있는 역사와 문화유산을 깨닫다 보면 자연스레 접점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과 중국, 일본이 과거사 문제 등으로 끊임없이 대립하고 있는 동북아시아 정세에 대해서도 비슷한 해법을 제시했다. 보코바 전 총장은 “과거 프랑스와 독일이 ‘공동 역사교과서’를 집필한 사례를 참조할 만하다”며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만큼 결코 쉽진 않겠지만 함께 역사를 들여다본다면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보코바 전 총장은 장래에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 활약하길 희망하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도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대학 캠퍼스 등에서 한국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글로벌 이슈에 대한 많은 호기심과 열정을 느꼈다”며 “이미 유엔에서 많은 한국인이 일하고 있지만 더욱 많은 한국 젊은이들이 과감하고 대담한 자세로 글로벌 사회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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