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호 < KDI 전문연구원 >
최근 ‘캐러밴(caravan)’이라 불리는 3500여 명의 이주민들이 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등 중남미 국가에서 미국 국경으로 몰려들고 있다고 한다. 이들 캐러밴이 수천㎞를 걸어 미국으로 몰려들게 된 요인 중 하나는 폭발적인 인플레이션이다. 베네수엘라는 올해 물가상승률이 하루에 4%, 연간 100만%를 웃돌 전망이다.
이런 초인플레이션을 유발한 주체는 국가다. 한 나라 안에서 가장 많은 돈이 필요한 경제주체는 국가다. 국가는 국방, 치안, 교육, 복지 등에 막대한 예산을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 무분별하게 화폐를 찍어내면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가져오게 된다.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대표적 요인 중 하나는 통화 공급 증가다. 노벨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은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든 반드시 통화와 관련된 현상”이라고 언급했다. 즉, 통화 발행량에 따라 해당 국가의 물가 수준이 좌우된다는 것이다.
국가가 무분별하게 화폐를 찍어내면 어떤 최후를 맞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가 있다. 바로 독일 나치 정부와 히틀러다. 독일 정부는 1차 세계대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전쟁 비용을 부담해야 했다. 전쟁이 끝나자 막대한 전쟁 배상금까지 승전국에 지급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독일 정부는 채권을 팔아서 자금을 충당할 생각이었다. 그런 방식으로는 필요한 자금을 충당할 수 없었다. 결국 독일 정부는 대규모 화폐 발행을 단행한다. 그 결과 당시 독일은 매주 100% 가까운 물가상승률을 기록했다. 1914년 독일 물가를 100으로 평가할 때, 1922년에는 1440 수준으로, 인플레이션이 가장 극심했던 1923년에는 126조1600억 수준으로 치솟았다.
당시 근로자들은 임금을 받자마자 식료품점으로 달려가야 했다. 조금만 늦어도 식료품 가격이 오르기 때문이었다. 아침식사를 위해 불쏘시개를 구입하러 가게에 가기보다 지폐를 태워 불을 피우는 것이 더 저렴한 상황이었다. 즉, 사람들이 돈을 받으면 가능한 한 가장 빨리 소비하는 게 돈을 버는 길이었다.
당시 독일의 제지공장과 인쇄공장은 지폐 발행을 위해 공장을 24시간 가동해야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권에 대한 수요를 따라잡기는 어려웠다. 결국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고통받던 독일 국민들은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당을 선택하기 이른다. 최근 중남미 국가에서도 군사 개입 움직임이 보인다고 한다. 과거의 나치 독일과 같은 역사가 주는 교훈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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