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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번 이상 받은 곳 1018社…R&D 지원금은 '좀비기업' 먹잇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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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용 저효율 R&D 지원사업
(1) 겉도는 中企 R&D 지원시스템

성공률 92%라지만…사업성 없는 '성공과제'만 수두룩
지원 과제 절반은 사업화 안돼…매출·고용 창출 '0'
'실패' 평가땐 받은 돈 토해내야…혁신적 연구는 실종



[ 김기만/김진수 기자 ] 자동차 부품업체 A사는 업계에서 ‘블랙홀’로 불린다. 중소벤처기업부 등 정부 부처로부터 최근 8년간 정책자금을 20여 차례 받아서 붙여진 별칭이다. 보유하고 있는 기술을 조금씩 변형해 기술 개발에 성공한 대가로 받은 지원금이다. 또 다른 차 부품업체 B사의 대표는 실의에 빠져 있다. 2015년 정부 연구개발(R&D) 과제로 자율주행차 관련 기술 개발을 제안해 지원금을 받았지만 실패라는 판정을 받았다. B사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2년간 지원받은 6억원을 토해내고 힘들어 하고 있다.

이 두 회사의 사례는 국내 R&D 지원 체계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저비용 고효율 구조에 모험과 도전을 기피하게 해 각 주체가 홀로 연구하는 폐쇄형 모델”이라고 지적한다.


◆중복 지원 등 쏠림 지속

가장 눈에 띄는 문제점은 R&D 지원혜택을 소수 업체가 받는 중복 지원이다. 2010년 이후 지난해까지 산업통상자원부, 중기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정부 R&D 과제(4만3401개)를 10회 이상 지원받은 기업은 1018곳으로 전체 지원받은 기업의 10%나 됐다. 이 중 재정지원을 10회(금액 기준 5억원) 이상 받은 업체 107곳을 대상으로 매출과 고용 증가 여부를 조사한 결과 평균 매출 증가율이 10% 미만인 기업이 54곳으로 50.4%를 차지했다. 고용 증가율 10% 미만인 기업도 69곳으로 64.4%에 달했다.

경기도의 한 기계 부품업체 관계자는 “비슷한 주제인데도 유독 잘 선정되는 업체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정부 지원금을 직원 인건비 등으로 전용하다 보니 R&D는 뒷전”이라고 지적했다. 김규환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은 “정부가 R&D 지원 방식을 양적 확대에만 치중할 게 아니라 자금 지원에 따른 실효성을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R&D 지원의 또 다른 문제는 ‘좀비기업’으로 불리는 한계기업의 연명 수단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계기업은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 1 미만인 기업으로, 영업이익으로 대출금의 이자를 갚지 못하는 상태가 3년 이상 지속된 기업을 말한다. 2014년 한계기업 142곳 중 R&D 지원 과제로 지원금을 받았지만 지난해 2월까지 그대로 한계기업에 남은 업체는 45.77%인 65곳에 달했다. 경기 안산에 있는 한 중소기업 대표는 “동종 업체 중 기업 본연의 사업을 통해 존속하는 게 아니라 정부 과제로 연명하는 곳이 있다”며 “성장 기업에 지원해야 할 자금이 한계기업 생존에 쓰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R&D 성공률’ 92%의 함정

지난해 중기부 R&D 최종평가 과제 4651건 중 4317건이 성공 판정을 받았다. ‘R&D 성공률’은 92.8%였다. 이렇게 R&D 성공률이 높은 것은 성공 가능한 과제를 제출하고, 심사단이 이를 지원 대상으로 선정해주기 때문이라는 게 정부의 분석이다. 개발해 놓은 기술을 약간 변형해 과제로 제출하면 성공이라고 판정해준다는 얘기다. 기업들이 어려운 과제에 도전하지 않는 것은 제도 때문이다. 과제에 성공하면 기술료로 지원금액의 10%만 내면 된다. 하지만 실패하면 지원금액 수억원을 고스란히 토해내야 한다. 또 3년간 정부 R&D 과제에 참여도 할 수 없다. 중소기업들에는 큰 타격이다.

전문가들은 “R&D 시장에서 도전과 모험을 몰아내는 지원 시스템”이라고 지적했다. 지금도 수행 결과가 안 좋더라도 성실히 연구한 사실이 인정되면 불이익 조치를 면제해주는 ‘성실 실패제도’가 있다. 하지만 이를 활용하는 기업은 극히 드물다.

이런 편법에 가까운 R&D 지원금 수령의 결과인 성공률 92%는 허수라고밖에 볼 수 없다. ‘R&D에는 성공했지만 돈 버는 데에는 실패한 과제’가 전체의 절반가량 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지난해 매출, 수입대체액 등 실적과 연결된 ‘R&D 사업화율’은 51.6%에 그쳤다. 김대현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R&D 지원이 사업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성과 분석 평가 체계를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며 “정책자금을 받지 못한 기업에 지원 기회를 확대하는 방안도 고민해 볼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올해 중기부의 중소기업 R&D 지원 자금은 1조917억원, 정부 부처 전체로는 3조원을 웃돈다. 60만 개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대표적인 정책 자금이다. R&D 자금은 융자금과 달리 성공 판정을 받으면 이자나 원금을 상환하지 않아도 돼 인기가 높다.

김기만/김진수 기자 m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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