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지는 인텔 CPU 공급난
클라우드 붐에 데이터센터 급증
인텔, 서버용 제품 생산 집중
신제품 국내 물량 100개뿐
물량 못구한 중소업체 '발동동'
경찰청 데스크톱 교체 사업
中企 입찰 포기로 대기업에 허용
[ 배태웅 기자 ] PC 핵심 부품인 중앙처리장치(CPU) 가격이 급등하면서 때아닌 PC 공급난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 용산 전자상가 등 PC 부품 유통시장에서는 인텔 주요 CPU 가격이 지난 석 달 사이 30% 이상 치솟았다. 하반기 이후 인텔이 시장에 내놓는 CPU 물량이 크게 줄어들면서 빚어진 현상이다. PC 시장 성수기가 아닌데도 공공기관, PC방들이 제때 데스크톱 PC를 구매하지 못하는 일까지 생겨나고 있다.
◆인텔 CPU “씨가 말랐다”
인텔은 지난 17일 국내에서 9세대 인텔 프로세서 신제품 출시를 발표했다. 하지만 전자 유통 상가의 소매상은 물론 중소 PC 제조 업체도 관련 제품을 받지 못하고 있다. 국내에 공급된 물량은 100개 정도로 일반적인 신제품 발표 때와 비교해 턱없이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구형 CPU 공급난도 수개월째 이어져 중소 제조업체들이 곤란을 겪고 있다. PC업계는 대목인 연말 시즌이 다가오지만 신제품은커녕 기존 PC 수요조차 충당하지 못하고 있다. 한 조립PC 제조업자는 “인텔 유통업체들이 물량을 내놓지 않아 방법이 없다”며 “신제품 물량도 적어 공급 부족이 길어지고 있다”고 했다.
통상 중견 PC업체나 대기업은 수량·가격을 예측해 계약하기 때문에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필요에 따라 유통 시장에서 물량을 확보해온 조립PC 업체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중소 업체끼리 물량 확보 경쟁이 붙으면서 소매용 CPU 가격은 지난 7월부터 오름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인터넷 가격비교 사이트 다나와에 따르면 인텔 8세대 코어 i7 제품의 평균 구매 가격은 올 7월 40만원에서 9월 54만원까지 뛰었다. 인텔의 다른 주력 제품도 가격이 7만~13만원가량 뛰어 평균 30% 이상 상승했다. CPU 가격이 오르면서 중소 업체의 데스크톱 PC 가격도 5만~10만원가량 덩달아 높아졌다.
CPU 공급이 부족해진 이유로는 클라우드 서비스 확대와 데이터센터 증가가 꼽힌다. 인공지능(AI)과 클라우드 기술이 보편화되면서 데이터센터에 투입되는 서버용 CPU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인텔이 서버용 CPU 공급에 집중하면서 소비자용 제품 물량이 부족해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정보기술(IT)업계에서는 인텔이 10나노미터(㎚) 공정으로 전환하는 데 차질이 생기면서 공급난이 더 심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밥 스완 인텔 최고재무책임자(CFO) 겸 최고경영자(CEO) 대행은 지난달 28일 공개서한을 통해 “단기적으로 서버용 고성능 제품을 생산하는 데 집중하겠다”며 “10억달러(약 1조원)를 투자해 공급 물량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반도체 공장을 증설하더라도 공급량을 확보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공공기관·PC방도 발 동동
CPU 공급난이 장기화하면서 공공기관의 PC 조달 사업도 차질을 빚고 있다. 7월 경찰청이 조달청 나라장터에 공고한 ‘2018년 사무용 PC 구매 사업’은 사업자를 찾지 못해 세 차례나 유찰됐다. 경찰청이 구매할 PC는 총 1만7000대 규모다.
데스크톱 PC는 정부가 중소기업 간 경쟁제품으로 지정한 품목으로 중소기업만 조달에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CPU 공급이 줄면서 중소업체들이 입찰을 포기하자 경찰청은 8일 일반 경쟁으로 입찰 공고를 바꾸고 대기업과 외산업체까지 참여할 수 있게 했다. 공공 조달 시장에서 데스크톱 PC가 일반경쟁으로 전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PC방들도 ‘배틀그라운드’처럼 고성능을 요구하는 게임이 인기를 끌면서 노후 PC를 교체해야 하지만 물량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부 PC방은 사후서비스를 포기하고 병행수입 제품을 구매하거나 또 다른 CPU 제조사인 AMD 제품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공급 부족이 길어지면 대형 PC업체도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업체 디램익스체인지는 9월 CPU 공급 부족으로 올해 글로벌 노트북 시장이 0.2%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IDC와 가트너도 CPU 공급 부족으로 4분기 글로벌 PC 시장의 성장세가 꺾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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