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 논설위원
[ 오형규 기자 ] ‘대약진운동’ 기간(1958~1962)에 중국 전역에서 쌀 수확량이 급증해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는 보고가 속속 올라왔다. 마오쩌둥은 이에 고무돼 ‘잉여식량을 어떻게 할까’ 고민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 숫자는 각 지역에서 징벌을 모면하려고 당 중앙에 부풀려 보고한 것이었다.
역사가 프랑크 디쾨터는 《마오의 대기근》에서 성과가 처참한데도 통계 부풀리기 탓에 대약진운동이 더 오래 지속됐다고 봤다. 허황한 목표와 통계 조작의 대가가 4500만 명이 사망한 ‘20세기 최대 비극’이다. “통계는 고성능 무기와 같아 올바로 이용하면 유익하지만, 잘못 쓰이면 치명적인 재앙을 부른다”는 말대로다.
현대인은 통계 홍수 속에서 산다. OECD 통계가 연간 9000여 건에 달하고, 국내 공식 통계만도 1000가지가 넘는다. 마크 트웨인이 통계를 ‘새빨간 거짓말’에 비유했지만,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통계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그럴 뿐이다.
통계 왜곡은 정치적 목적에 기인하지만, 통계 오독(誤讀)은 인지능력 한계에서 비롯된다. 인류는 진화과정에서 정확성(알고리즘)보다 어림셈법(휴리스틱)에 익숙해 통계·확률을 인식하는 데 미숙하다. 알고도 오독했으면 그건 도덕성의 문제다.
몇 해 전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으로 선풍을 일으켰지만, 곧바로 통계 오류 논란에 휩싸였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피케티가 추정치 잡아늘림, 평균 왜곡, 데이터 재생산, 입맛대로 데이터 고르기 등 7가지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했다.
국내에서 흔한 통계 오독이 GDP와 10대그룹 매출을 비교하는 것이다. 국내 부가가치 합계(GDP)를 해외 매출이 80%인 대기업 외형과 비교하는 것부터가 부적절하지만, 재벌 경제력 집중 공격수단으로 자주 이용된다. 뻔히 알 만한 경제학 교수들까지 이런 주장을 편다.
‘지식소매상’ 유시민 씨의 “그럼 우린 천민이냐”는 주장은 통계 오독의 압권이다. 2014년 코레일 노조 파업 때 유씨는 ‘귀족노조’라는 비판에 대해 “1인당 GDP가 2만4000달러이니 4인 가족이면 9만6000달러, 약 1억1000만원이다. 평균연봉 6200만원인 코레일 노조가 무슨 귀족노조냐”고 주장했다. GDP에 정부·기업 몫이 포함돼 있음을 그가 정말 모르고 한 말일까.
그제 국정감사에서 강신욱 통계청장이 “나 같으면 그렇게 해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해 주목을 끌었다. 야당 의원들이 “1990~2016년 가계총소득이 186% 증가할 동안 가계 평균소득이 90% 늘어나는 데 그쳐 소득 불평등이 확대됐다”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주장이 맞느냐는 질의에 대한 답변이었다.
통계는 대양을 항해할 때의 나침반과도 같다. 정부가 통계를 오독하면 경제가 산으로 간다. 오류를 인정하는 것도 용기다.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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