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 논설위원
[ 고두현 기자 ] 해발 8000m 이상 설산이 몰려 있는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산맥. 만년설에 뒤덮인 이곳 상공으로는 국제선 항공기가 다니지 않는다. 산이 워낙 높고 악천후가 심하기 때문이다. 인도에서 동아시아로 가는 비행기도 태국·방글라데시 쪽으로 빙 둘러 간다. 이곳을 넘어 이동하는 생명체는 몸 속에 산소를 저장할 수 있는 철새 쇠재두루미와 줄기러기뿐이다.
길이가 2400㎞나 되는 이 산맥은 인도 대륙과 유라시아 대륙의 지각 운동으로 매년 0.5~1cm씩 높아지고 있다.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산의 현재 고도는 해발 8848m다. 히말라야라는 지명은 고대 산스크리트어(梵語)의 ‘눈(hima)’과 ‘거처(alaya)’가 결합된 복합어다. 힌두교에서는 ‘신들이 머무는 장소’라고 한다.
‘신들의 거처’에 오르는 것은 인류의 오랜 꿈이었다. 이 험준한 산맥을 처음 오른 유럽인은 포르투갈 예수회 신부와 일행 2명으로 기록돼 있다. 이들은 1624년 해발 5600m 고개를 넘었다. 인간이 7000m급에 오른 것은 한참 뒤인 20세기 초반이다. 1950년 프랑스 등반대가 8000m급 등반에 성공했고, 1953년 뉴질랜드 산악인인 에드먼드 힐러리와 셰르파 톈징 노르가이가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산 정상을 밟았다.
한국 등반대는 1995년 8000m급 14개 봉우리를 모두 정복했다. 이 과정에서 사고도 많았다. 등반 도중에 사망한 산악인은 1000여 명. 이 가운데 한국인이 90여 명에 이른다. 1971년 5월 김기섭 대원이 마나슬루 7600m 지점에서 돌풍을 만나 추락했다. 이후 그의 형과 아우까지 3형제가 히말라야에 묻혔다.
1998년 9월에는 최승철 김형진 신상만 대원이 눈보라에 희생됐다. 한국 여성으로 처음 에베레스트에 오른 지현옥,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도전한 고미영 대장도 목숨을 잃었다. 2011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산소통 없이 에베레스트에 올랐던 박영석 대장이 안나푸르나에서 숨졌고, 2012년엔 김형일 장지명 대원이 강풍에 휘말려 추락사했다.
지난 주말에는 구르자히말 남벽의 신루트 개척에 나섰던 김창호 대장 등 5명이 눈폭풍에 휩쓸려 최후를 맞았다. 사고가 난 지역은 암벽만 3000m나 되는 난코스다. 김창호 대장은 국내 최초로 히말라야 8000m 이상 14좌를 무산소로 최단기간에 완등한 베테랑이다. 2011년 박영석 대장의 시신을 찾으러 네팔행을 자처했던 주인공이기도 하다.
평소 “정상에 올랐다고 다 된 게 아니라 집에 안전하게 돌아와야만 성공”이라며 ‘집에서 집으로’를 좌우명으로 삼았던 그였지만 이번에는 무사히 돌아오지 못했다. 티베트 사람들은 히말라야를 ‘세상의 어머니’라고 부른다. 그 품에 안겨 스스로 산이 된 그와 대원들의 명복을 빈다.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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