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가 기존 굴뚝 산업을 대체할 새로운 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전문가들의 영역에 있었던 만큼, 낯설고 이해하기 어렵다. 국내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제약·바이오 산업의 일면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다리와 꼬리, 귀 등을 만저나가다보면 온전한 코끼리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편집자주]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의 영광은 면역관문억제제가 차지했다. 면역관문을 발견하고, 그 원리를 통해 새로운 암 치료법을 만든 두 과학자가 상을 받았다.
제임스 P. 앨리슨 텍사스대 MD앤더슨암센터 교수는 면역체계에서 제동장치 역할을 하는 단백질 'CTLA-4'를 연구했다. CTLA-4와 결합해 그 기능을 차단하는 항체 개발을 주도했고, 세계 첫 면역관문억제제 여보이를 탄생시켰다. 여보이는 2011년 미국 식품의약국(FDA)로부터 악성 흑색종 치료제로 허가받았다.
혼조 다스쿠 일본 교토대 명예교수는 면역세포인 T세표의 표면에 나타나는 'PD-1' 단백질을 처음 발견했다. PD-1이 암세포 표면에 발현되는 'PD-L1' 단백질과 만나면 T세포는 암세포를 공격하지 못한다. 혼조 교수의 연구는 PD-1 단백질에 먼저 결합하는 면역관문억제제인 키트루다와 옵디보의 개발로 이어졌다.
면역관문억제제는 이렇듯 암세포가 T세포를 속이는 과정을 막아 정상적인 면역 활동을 통해 암을 치료하는 의약품이다. 면역관문억제제가 노벨상을 받은 이유는 암 완치의 가능성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2015년 91세의 나이에 피부암인 악성 흑색종 진단을 받았다. 암이 뇌까지 퍼져 사망 선고를 받아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방사선 치료와 함께 키트루다를 투여한 지 4개월 만에 암세포가 사라졌고, 현재까지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기존 항암제의 생명연장 효과를 넘어서 치료를 기대하게 했기 때문에 세계가 깜짝 놀랐다.
하지만 면역관문억제제도 극복해야 할 과제들이 있다. 면역관문억제제는 환자의 면역체계를 이용해 기존 항암제의 독성 및 내성 문제를 해결했다. 다만 효과를 보는 환자의 비율이 20~30%에 그친다. 또 비싼 약가도 문제다.
시장조사기관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면역관문억제제의 월평균 치료 비용은 약 1만3000만달러(1500만원)에 달한다. 연간으로 1억원이 넘는다. 면역관문억제제의 낮은 반응률을 높이기 위해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는 병용요법도 약가를 높이게 된다. 면역관문억제제에 더해 다른 약을 함께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면역관문억제제가 비싼 이유는 항체 의약품의 제조 과정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화학 의약품은 화학적인 합성 방법을 통해 제조돼 생산 비용이 싸다. 그러나 단백질(항체)를 치료 성분으로 하는 항체 의약품은 생물학적 방법을 통해 만들어진다. 특정 단백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세포를 배양하고, 이 세포가 만들어낸 물질 중 필요한 항체만을 걸러내는(정제) 과정이 필요하다. 이같은 생산시설의 유지관리 비용도 기존보다 많이 든다.
비싼 가격에도 항체 의약품이 세계 의약품 시장을 주도하는 이유는 기존 화학합성 의약품이 극복하지 못한 질환의 대응법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의 집계를 보면 지난해 세계 매출 10대 의약품 중 7개가 항체 의약품이었다.
박영우 와이바이오로직스 대표는 "면역관문억제제의 표적은 분자량이 큰 신호전달 수용체"라며 "분자량이 작은 화학합성 의약품으로는 접근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화학합성 의약품의 표적은 세포 속의 효소 등 분자량이 작은 것이란 설명이다.
항체 의약품은 통상적으로는 연간 치료비가 2만달러(2200만원) 이상이라는 게 업계의 얘기다. 면역관문억제제가 이보다도 더 비싼 것은 약가에 그동안의 연구개발비가 포함됐을 것이기 때문으로 본다. 더 많은 면역관문억제제들이 개발돼 시장에 나온다면 기존 제품들의 약가도 떨어질 것이란 관측이다.
와이바이오로직스는 기존 제품보다 가격 경쟁력을 갖춘 국산 면역관문억제제를 개발하고 있다. 항암제 개발의 흐름이 면역관문억제제와의 병용이기 때문에 국산 제품의 필요성이 크다고 봤다. 내년에 PD-1 면역관문억제제의 임상 1상에 들어갈 계획이다.
큐리언트는 화학합성 물질을 바탕으로 면역항암제를 개발 중이다. 선천면역과 관련된 세 가지 물질을 동시에 억제하는 신약후보다. 면역관문억제제의 낮은 반응률은 T세포에게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학습시키는 선천면역이 망가진 것이 원인이기 때문에, 이에 관여하는 물질이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민수 한경닷컴 기자 hm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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