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순 논설위원
[ 허원순 기자 ] 가사(家事)가 경제적 가치를 가진 노동의 개념으로 통하게 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여권(女權) 신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물론 아직도 쓰임새는 제한적이다. 이혼법정의 재산분할, 교통·의료 사고를 입은 전업주부에 대한 손해배상이나 보험금 산정 때 정도다. 그나마 명확한 기준도 없고, 법원 인용도 재판부마다 제각각이다.
통계청이 무급의 가사노동을 경제적 가치로 계산하면 시간당 1만569원(2014년)이라는 추산자료를 처음으로 내놨다. 국내 전체 가사노동 가치는 360조7300억원, 당시 국내총생산(GDP)의 24.3%에 달한다. GDP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그해 5210원이었던 최저임금의 두 배 가치라고 정부가 공인한 셈이다. 육아와 교육, 세탁과 청소, 요리와 장보기, 성인과 동식물 돌보기까지 워낙 다양한 게 가사노동이다. 보육처럼 지혜·지식에 체력과 인내심까지 필요한 일도 적지 않아 최저임금과 단순 비교는 쉽지 않을 것이다.
‘15세 이상 한국인은 하루평균 135분의 가사노동을 하며, 4인 가구에서 혼자 전담할 경우 연봉 2800만원 가치.’ 통계청 발표를 요약하면 이렇다. 실제 남녀의 분담비율은 1 대 3, 15년 전 1 대 4에서 완만한 변화가 나타났다. 1인 가구와 맞벌이의 증가가 요인이라고 한다.
“여성의 무급노동 기여는 국민계정과 경제통계 등에 반영돼야 한다”는 세계여성대회의 유엔 선언이 나온 게 1985년이다. 이런 시도들을 보면 통계청의 이번 추계자료는 늦은 감도 없지 않다. 물론 법원뿐 아니라 보험업계 등 직접 이해관계자도 적지 않아, 보다 정확한 통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한 숙제다.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봐도 경제지표로서 GDP가 만능은 아니다. 지하경제는 반영되지 않는 데다 ‘공유경제’ 성과 반영의 어려움도 GDP의 한계를 얘기할 때 인용된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삶의 질 변화를 보여주는 데 한계가 있다”는 논리로 ‘GDP 한계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는 “디지털경제 확대로 GDP 신뢰가 떨어지고 있다”며 ‘GDP 개선론’을 내놓은 적도 있다. ‘학원 대신 유튜브로 무료강좌를 들으면 소비자 효용은 높아지지만 GDP는 감소한다’는 논리다.
그래도 한 나라의 거시경제 상황을 보여주면서 정책의 효율성과 경제성장 정도까지 포괄하는 대표 지표로 이를 대체할 게 없다는 점이 문제다. 더구나 정부 주도의 GDP 대체지표 개발에는 의문표가 붙을 수밖에 없다. 권력의 속성상 위험하다.
가사노동 가치 산정은 의미 있는 시도다. 양성평등 차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여기서도 문제는 객관성, 독립성, 전문성 유지다. 정부가 이 자료를 어떻게 쓸지 궁금해진다. 국가 인프라인 통계가 크고 작은 분쟁을 줄이는 데 기여해야지, 논란을 키워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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