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홍영표 원내대표가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을 향해 “중소기업과 협력업체의 임금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촉구해 주목을 끈다. 홍 원내대표는 그제 ‘한경 밀레니엄포럼’에서 “양대 노총은 상위 10% 노동자인 조합원들의 권익만을 지키는 한계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이같이 주문했다. “노동계도 미래를 함께 고민하고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는 고언(苦言)은, 그가 민주노총 노동운동가 출신이란 점에서 더 큰 울림을 줬다.
한국의 노사관계는 건국 이후 지금까지 ‘기업(사용자)은 강자, 노조는 약자’라는 이분법적 틀이 지속돼 왔다. 노사 관련 제도 역시 이런 틀 안에서 노조를 ‘보호대상’으로 삼는 내용이 주종을 이뤘다. 1987년 개헌과 함께 노조의 전국조직화가 진행돼 영향력이 급신장한 지금도 이런 기조는 변함이 없다. 자연히 공공부문, 대기업, 금융회사 노조들은 인사관리와 작업장 배치 등 경영의 고유 영역에서까지 발언권을 행사할 정도로 힘이 커진 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속적인 노조 보호조치들은 기업을 ‘무장해제’시키고 노동현장을 ‘(노조에)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만들고 말았다. 노동계는 정치와 결탁하고, 그 하부구조를 자처하는 대가로 정치권에 진입해 불균형을 고착화하고 가속화하는 데 여념이 없다. 주요국이 파업 시 다 보장하는 대체근로자 투입권조차 한국 기업들은 갖고 있지 못한 것도 그런 구조적 문제가 누적된 결과다. 대형 사업장 노조는 철마다 ‘기득권 사수투쟁’을 벌여 생산성과 무관하게 속속 억대 연봉을 쟁취해 내고 있다. 이는 협력업체 등 수많은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몫을 그만큼 줄이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홍 원내대표가 “이제 상위 10%는 억제하고, 중소기업 근로자 임금을 대기업의 60~70%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며 노동계 협조를 촉구한 배경일 것이다.
경기부진 장기화로 무엇보다 기업들의 체력이 급속하게 고갈되는 상황이다. 작은 기업일수록 불황의 충격파는 클 수밖에 없다. 거대 노조들이 사회정의를 앞세우면서 진짜 ‘사회적 약자’인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절박함을 외면하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하기 힘들다. ‘제몫 늘리기’를 멈추고 주변을 조금이라도 살펴본다면 정작 ‘사회적 책임’이 무엇을 뜻하는지 긴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정치적 셈법을 버리고, 우리 사회의 현실을 직시해 그에 상응하는 행동을 취하는 노조의 성숙한 변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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