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순 논설위원
[ 허원순 기자 ] “서울 근교 일산에서 태어나 강이 흐르고 언덕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환경에서 자랐다.” 세계적인 아이돌 그룹이라면 왠지 다른 혹성에서 왔다고 해야 어울릴 것만 같다. 아니면 태생과 성장은 슬쩍 가려 일부러라도 신비감을 만드는 게 인기관리에 도움 될 것 같다. 그런데 방탄소년단(BTS)의 유엔본부 연설은 아니었다.
24세 청년, BTS를 대표한 리더 RM(김남준)은 평범한 성장기를 얘기해 더 풋풋하고 감동적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보이 그룹’(미국 피플) ‘인터넷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25인 중 유일한 한국인’(미국 타임) ‘트위터 최다활동, 남성그룹 부문’(기네스)…. BTS가 거둔 성과와 기록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다. ‘한국가수 최초의 빌보드 차트 1위’도 빼놓을 수 없다. 최고조의 이 슈퍼 스타들이 유엔에서 세계의 10대, 20대들에게 자신의 꿈과 좌절, 노력과 도전을 담담하게 얘기했다.
7분간의 영어 연설은 유창했다. “I was lucky that I didn't give it all up”(포기하지 않았던 것이 나의 행운)이라고도 했고, “Yesterday’s me is still me. I am who I am with all of my faults and my mistakes”(어제의 나도 여전히 나고, 지금의 나도 결점 많고 실수도 하는 나다)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또래들에게 “Love yourself(스스로를 사랑하세요)”라고 말했다. 진솔했기에 더 큰 울림이 있다. 한국가수로는 유엔총회 행사장에서 처음인 이 연설은 유튜브로 지금도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다.
담담한 성공담 자체도 좋았지만, RM의 메시지 전달력을 배가시킨 것은 유창한 영어였는지 모른다. ‘이들의 해외 토크쇼와 공연 영상을 찾아 놀 듯이 영어공부하는 10대가 늘고 있다’는 다소 성급한 기사도 보인다. 미국드라마 ‘프렌즈’를 자막 없이 반복 청취하며 배웠다는 RM식 영어독학법이 또 한 번 ‘영어학습 시장’을 흔들지 모른다.
영어 얘기 하면 뜨끔할 이들이 많다. 최근 “외교관들 영어실력이 너무 부족하다”는 강경화 장관의 질타를 받은 외교부 직원들부터 그럴 처지다. 당시 강 장관은 관련부서에 대책마련까지 시켰다. 이쯤 되면 외교관들은 어학 공부부터 하게 하고, 우선은 BTS 같은 민간 외교그룹에 기대는 게 나을지 모른다. 보름 전 방한했던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슈퍼주니어 외교’라는 표현까지 썼다.
직업 외교관들은 영어 못한다고 장관의 공개 질책을 받았고, 자력 공부한 RM은 유창한 영어로 국제무대에서 할 말 다하며 갈채를 받았다. 우리 청소년들도 RM의 유엔연설부터 한번 들어보면 좋겠다. 7분이다. ‘수저타령’은 다 털고, 스스로를 더 사랑하며 멋진 꿈을 꾸면 좋겠다. 청년들을 꿈꾸게 해보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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