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정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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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의 역사는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주로 피난 갔던 선조가 다시 한양으로 돌아오면서 시작됐다. 당시 월산대군 저택과 그 주변 민가 여러 채를 합쳐 ‘시어소(임금이 임시로 거처하는 곳)’로 정해 행궁으로 삼았다. 이후 광해군이 즉위한 뒤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경운궁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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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일제는 덕수궁을 공원으로 개조해 공개했고 석조전을 덕수궁미술관으로 개관해 일본 근대미술품을 전시했다. 돈덕전이 있던 자리에는 동물원을 신설하기도 했다. 해방 후 1963년 덕수궁을 사적 124호로 지정했고 꾸준히 복원작업을 했다.
덕수궁은 경복궁처럼 웅장한 느낌은 없지만 아기자기한 느낌의 궁궐이어서 산책하기에 좋다. 궁궐 중간 연못 옆에는 한국 최초의 근대식 건물인 석조전이 있다. 고전주의 양식의 철골 콘크리트 건물로 황궁의 정전(왕이 나와서 조회를 하던 궁전)으로 기획돼 1910년 준공됐다. 현재 석조전 동관은 대한제국역사관, 서관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이다. 석어당은 덕수궁의 유일한 중층 목조건물이다. 대화재 때 소실됐지만 그해 바로 중건됐다. 선조가 임진왜란 중 의주로 피난갔다 환도 후 거처했던 곳이자 광해군이 인목왕후를 유폐한 장소다. 인조반정이 성공한 뒤에는 광해군의 죄를 문책한 곳이기도 하다. 덕수궁으로 환궁한 고종이 정전으로 사용한 중화전은 원래 2층 건물이었지만 1904년 화재 후 단층 건물로 중건됐다. 중화전은 정문인 중화문과 함께 보물 제819호로 지정돼 있다.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가면 정동극장 뒤쪽 중명전에 이른다. 황실의 도서와 보물을 보관하는 용도의 황실 도서관으로, 현재는 전시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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