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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인터뷰] 밀레 라인하르트 진칸 회장 "단기실적 연연 안해… 한 세대 미리 내다본 전략이 120년 성장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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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代째 가족경영 이어온 밀레 라인하르트 진칸 회장

"밀레·진칸 두 가문이 100% 지분 보유…사외이사 없이 경영
지배구조는 기업이 알아서…獨 정부는 전혀 관여 안해
남들과 다른 제품 만들기 위해 '틀에서 벗어난 사고' 강조
큰 회사 아닌 '특별한 회사'가 목표…電裝사업 진출 안해"



[ 고재연 기자 ]
독일 밀레는 유럽 가전시장의 ‘맹주’로 꼽힌다. 120년 동안 이어온 전통을 지켜나가면서도 혁신의 끈을 놓지 않은 덕분이다. 지난달 31일 독일 베를린에서 개막한 유럽 최대 가전박람회 ‘IFA 2018’에 참석한 김현석 삼성전자 CE(소비자가전)부문장(사장)이 다른 일정을 제쳐놓고 밀레 부스부터 찾은 이유다.

오랜 역사가 키워준 브랜드 파워와 미래 트렌드를 주도하는 혁신에 힘입어 밀레는 포화 상태에 이른 가전시장에서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41억유로(약 5조원)로 전년보다 4.3% 늘었다.

1일(현지시간) 밀레 부스에서 만난 라인하르트 진칸 밀레 회장은 꾸준한 성장의 비결로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꼽았다. ‘밀레 가문 51%, 진칸 가문 49%’란 지분율 구도를 1899년 창업 때부터 지켜온 덕분에 장기적인 안목에서 미래를 준비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진칸 회장은 “밀레는 분기나 연도가 아닌, 세대(generation) 단위로 경영전략을 짠다”며 “단기 실적을 요구하는 소액주주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기 때문에 먼 미래를 보고 연구개발(R&D)에 투자해온 게 하나씩 결실을 맺고 있다”고 말했다.

▶독특한 지배구조를 120년째 이어가고 있습니다.

“밀레 주주는 밀레 가문과 진칸 가문 구성원만 될 수 있습니다. 이사회는 사외이사 없이 5명 전원 사내이사로 구성돼 있죠. ‘가족 경영’으로 불리는 이런 독특한 지배구조가 밀레의 성공 비결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회사를 이끌 수 있거든요. 당장 실적이 안 나도 R&D에 지속적으로 투자할 수 있습니다. 저를 비롯한 경영진은 제품 고객 임직원, 딱 세 가지만 보고 일합니다.”

▶한국에서는 가업 승계에 부정적인 인식이 강합니다.

“가족 경영이라고 해도 아무나 최고경영자(CEO)가 될 수는 없습니다. CEO가 되려면 엄격한 내부 선발 과정을 거쳐야 하죠. 이사회에서 CEO 자질이 있는지, 어떤 비전을 갖고 있는지, 기업가정신이 있는지 등을 따져 가장 적합한 사람을 뽑습니다. 저 역시 베를린공과대에서 박사학위를 딴 뒤 BMW에서 근무하면서 경영 능력과 자질을 검증받았습니다.”

▶한국 정부는 삼성,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에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바꾸라고 압박하고 있습니다.

“독일 정부는 밀레의 지배구조에 전혀 관여하지 않습니다. 간섭할 수도, 간섭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죠. 지배구조는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 ‘알아서’ 할 일입니다. 각 기업이 각자 사정에 맞는, 가장 좋은 방안을 찾으면 됩니다. 기업이 지배구조 등 곁가지 일에 신경 쓰느라 본업에 집중하지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1901년 세계 최초로 세탁기를 개발한 뒤 혁신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IFA 2018에서 세계 최초로 세제를 자동으로 투입해주는 식기세척기를 내놨습니다. 그릇 양과 식기 오염 정도에 따라 세제량이 자동 조절되죠. 소비자는 기기에 식기를 넣고 세척 버튼만 누르면 됩니다. 인공지능(AI) 관련 연구도 활발하게 하고 있습니다. 세탁기나 식기세척기에 세제가 떨어지면 ‘밀레@모바일’ 앱(응용프로그램)을 통해 자동 주문할 수 있도록 했어요. 집에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식기세척기와 세탁기에 작동 명령을 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클릭 한 번으로 1200개 조리법 중 원하는 요리에 필요한 식재료를 자동 주문할 수도 있죠.”

▶아마존 알렉사와 협업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단순합니다. 알렉사가 유럽 AI 시장을 선도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지역별 시장 상황에 따라 밀레는 구글 아마존 애플 등 어느 곳과도 협업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근본적으로는 AI 생태계에 ‘표준’이 생겨야 한다고 봐요. 고객은 여러 제조사가 생산하는 기기를 섞어 사용하기 때문이죠. 머지않은 미래에 하나의 표준이 결정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디오산업에서도 VHS 베타맥스 비디오2000 등 여러 규격이 격돌했으나 결국 VHS만 살아남아 표준이 됐습니다. 누군가 결정해준 게 아니라 소비자가 그걸 선택했죠. 향후 AI 전쟁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겁니다.”

▶2016년 스마트홈 비즈니스 사업부를 신설했는데요.

“밀레의 ‘싱크탱크’ 같은 곳입니다. 엔지니어 40명이 모여 있는데 팀 단위로 아이디어를 진전시켜 현실화하는 방안을 고민하는 조직이죠. BMW에서 일할 때 ‘M테크’라는 조직이 있었는데, 이 팀의 별명이 ‘미친 사람들(mad guys)’이었어요.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요구받았기 때문입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7000번이나 디자인을 바꿔 스포츠카 Z시리즈의 시초인 Z1 제품을 디자인했고, 경영진은 이를 받아들였죠. 스마트홈 비즈니스 사업부의 핵심은 ‘틀에서 벗어난(out of box)’ 사고를 하는 것입니다. 두 달에 한 번 이사회를 할 때마다 현실화된 아이디어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있습니다.”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투자도 활발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밀레 벤처캐피털(VC)은 레시피 추천 스타트업 캡틴쿡, 최고급 요리를 반조리 상태로 배송해주는 스타트업 M셰프를 인수했습니다. 지난해 밀레는 전자기파를 이용해 음식을 조리하는 ‘다이얼로그 오븐’을 공개했어요. 다이얼로그 오븐 사용자를 위해 M셰프는 최고급 레스토랑에서만 맛볼 수 있는 16개 요리를 개발해 식기부터 식재료까지 한번에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소비자가 배달받은 식재료를 다이얼로그 오븐에 넣기만 하면 20분 만에 최고급 레스토랑의 요리를 맛볼 수 있죠. 소비자에게 ‘다이얼로그 오븐을 구매하는 것은 곧 최고 셰프를 고용하는 것과 같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겁니다.”

▶다른 가전업체들처럼 전장 사업에 뛰어들 계획이 있습니까.

“절대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핵심 사업에 집중해야 ‘프리미엄 제품’을 개발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개인적으로 전장 사업이 가전제품과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는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곳에 집중하려 합니다. 캡틴쿡, M셰프 등을 인수한 이유입니다. ‘계란이 깨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분산해 담으라’고 하지만 우리는 계란을 모두 한 바구니에 담는다는 전략을 갖고 있습니다. ‘큰 회사’가 아니라 ‘특별한 회사’가 되기 위해서죠.”

▶한국에서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기업인이 늘고 있습니다. 독일은 어떻습니까.

“독일은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해 주 35시간 근로 체제를 운영합니다. 일부 노조원이 근무 시간을 더 줄이자고 주장해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그럼에도 밀레는 세계 12개 공장 중 8개를 독일에 두고 있습니다. 경영 환경이 악화되더라도 독일을 떠나지 않을 계획입니다. 밀레는 이곳에서 4대에 걸쳐 가족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회사거든요. 독일에서 사업을 영위해야 할 ‘사회적 책임’이 있습니다. 가족 경영 구조이기 때문에 주주들의 반발 없이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밀레가 생각하는 기업가정신입니다.”

■라인하르트 진칸…

경영·역사·철학 두루 섭렵… BMW서 4년간 영업 경험

라인하르트 진칸 밀레 회장은 마르쿠스 밀레 회장과 함께 밀레 그룹을 이끄는 쌍두마차다. 창업주의 4대손인 진칸 회장은 독일 프라이부르크 알베르트루트비히대, 미국 하버드대, 독일 쾰른대에서 경제학·경영학·역사 및 음악사·철학을 공부했다. 이후 독일 베를린공과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땄다. 박사학위 취득 후 BMW에서 4년 동안 영업과 관련한 다양한 경험을 쌓은 뒤 1992년 밀레에 입사했다. 2011년 밀레 공동 회장으로 취임했다. 사내에서는 그를 ‘닥터 진칸’이라고 부른다.

밀레는 1899년 독일 동북부 작은 시골 마을인 헤르체브로크에서 탄생한 회사다. 손재주가 좋았던 기술자 칼 밀레와 사업 수완이 있었던 라인하르트 진칸(현 회장과 동명)이 서른 살에 함께 창업했다. 우유에서 버터크림을 분리해내는 크림 분리기가 이들의 첫 제품이었다. 이후 세계 최초 원목세탁기(1901년), 전기 식기세척기(1929년) 등을 내놨다.

전통적으로 기술 개발은 밀레 가문이, 경영은 진칸 가문이 맡고 있다. 밀레 가문이 지분의 51%를, 진칸 가문이 49%를 보유하게 된 것은 ‘기술’을 중시하는 진칸 가문의 배려에서 비롯됐다.

△1959년 밀레 공동 창업주 라인하르트 진칸 4대손으로 출생
△1988년 독일 베를린공과대 경제학 박사
△1988년 BMW 입사
△1992년 밀레 입사
△1999년 밀레 시니어 매니지먼트로 경영수업 시작
△2002년 밀레 이사회 최고경영자 선임
△2011년 밀레 공동 회장 취임

베를린=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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