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광엽 논설위원
나폴레옹(1769~1821)은 사법 군사 행정 등 다방면에서 탁월했지만, 경제에는 어두웠다. 그는 노동자들을 모아 도랑을 팠다가 묻도록 하는 일을 반복시켰다. 공공사업이 실업자를 구제하고 경제에 활력을 준다고 믿었던 것이다. 대중의 호응이 커지자 프랑스는 나폴레옹 사후에 ‘국립 작업장’이라는 거대한 공공사업기관도 설립했다.
그럴싸한 이 ‘나폴레옹 경제학’의 허상을 깨뜨린 이가 ‘천재적 사상가’ 프레데리크 바스티아(1801~1850)다. 그는 눈앞의 즉각적 효과로 공공사업을 판단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납세자의 경제활동 위축 등 일련의 연속적 효과를 함께 봐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지금은 상식이 됐지만, 당시엔 경제학자들도 몰랐던 ‘기회비용’ 개념을 제시하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구분이 핵심이라고 갈파했다. 나폴레옹이 불을 댕긴 프랑스의 ‘국가주의적’ 일자리 해법은 재정을 잠식했고 ‘6월 폭동’이라는 유혈극으로 끝났다.
'보이는 효과'만 본 나폴레옹
오늘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도랑 파고 묻기’와 얼마나 다른가. 문재인 대통령은 꼭 1년 전 TV 생방송에서 “일자리 만드는 데 쓰는 것이 세금을 가장 보람 있게 쓰는 방법”이라고 천명했다. 바스티아 이후 현대경제학이 ‘민간부문 구축효과’를 들어 ‘세금 일자리’ 정책에 회의적이라는 점에서 꽤 과격한 접근법이다. 이후 다른 비(非)전통적 대책들도 줄을 이었다. 소비가 부진하면 노동자 급여를 올리고, 일자리가 없으면 공무원을 늘리는 식이다. 양극화 해결도 부자로부터 세금을 더 걷어 빈자에게 나눠주는 ‘단순 이전’에 방점이 찍혔다.
그렇게 1년여를 밀어붙인 결과가 지금 보고 있는 경제지표들의 동반 추락이다. 세계 경제는 회복세가 뚜렷한데 한국만 ‘나홀로 불황’이다. 설비투자와 소비심리는 내리막이다. 세금 54조원을 일자리에 쏟았지만 고용은 악화일로다. 이전 정부에서 개선되던 양극화도 가파르게 다시 벌어지고 있다. 예고된 참사다. “공공 일자리 1개가 생기면, 시장 일자리 1.5개가 사라진다”는 OECD의 실증분석대로다.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마이 웨이(my way)’를 고집하고 있다. “우리에겐 아직 많은 세금이 남아 있다”는 강조도 빠뜨리지 않는다. 문제가 불거지고 불만이 터질 때마다 정부 보조금이 만병통치약처럼 배급된다. 그래도 불안을 떨치지 못한 청와대는 ‘역대급’ 팽창 재정을 선언했다.
'재정 만능'이라는 위험한 '확신'
또 한 번의 잘못 끼운 단추가 될 공산이 크다. 한국의 재정승수는 0.6 안팎으로 낮아진 상태다. 재정 1조원 투입 시 국내총생산(GDP) 증가가 6000억원 남짓이라는 의미다. 재정승수가 1을 밑도는 건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로버트 배로 하버드대 교수가 1984년에 처음 분석한 이래 미국의 재정승수는 0.4~0.9로 집계된다. 심각한 불황기라면 모를까, 일반적 경기하에서 재정투자의 유용성을 과신하는 것은 금물이다. 무차별 재정 투입에도 ‘잃어버린 20년’의 늪에서 허우적댄 일본이 반면교사다. 남미 경제의 몰락에 포퓰리즘적 재정 퍼주기가 도사리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진실’에 무관심한 채 ‘자기최면적 확신’을 앞세우는 태도다. 그러면 경제는 정치가 되고 만다. 나폴레옹의 ‘도랑 파고 묻기’도 기실 경제보다는 정치였다. 그는 “결과는 상관없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노동자계급에 부(富)가 분배된다는 사실뿐”이라고 했다. 프랑스의 ‘국가주의’로의 경도와 일생을 싸운 바스티아는 ‘진실’이라는 딱 한 마디를 유언으로 남겼다. 때로 “진실의 가장 위험한 적은 거짓말이 아니라 확신”(니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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