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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실 칼럼] 예고된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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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추격' 대비 못한 대가 현실화
文정부 산업재편 의지 있기나 한가
정권 내내 '고용대란' 가능성 높아"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박사



한국과 중국 간 기술격차가 1년으로 좁혀졌다는 연구기관들 분석은 “더 이상 한·중 기술격차에 통계적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는 얘기로 들린다. 한·중 수출경합도지수가 2000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차이나 포비아’라지만 ‘중국 굴기’는 누구나 예상한 일이다. 한국에 드리운 중국의 그림자는 ‘경쟁자 중국’이 아니라 ‘제1 수출 시장 중국’에 취해 출구를 제때 준비하지 못한 우리가 초래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문제는 앞으로 몰아닥칠 파장이다. 일찍부터 위기에 직면한 일부 주력 산업이 무너져 내리고 있지만, 산업의 출구 찾기가 늦어질수록 구조조정의 한계상황으로 내몰리는 주력 산업이 줄을 이을 건 불 보듯 뻔하다. 문재인 정부는 이를 예상하지 못했을까.

“산업정책에 몰입하려고 하는데 발목이 잡힌 듯한 느낌이다. 모든 게 ‘탈(脫)원전’ 때문이라고 하니 안타깝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말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산업부가 해온 일을 돌아보면 백 장관은 이런 말을 할 수 없다. 앞뒤 순서가 있지, 산업 재편의 아무런 그림도 전략도 없이 에너지부터 손댄 건 문재인 정부였다.

미래 먹거리를 탐색해야 할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존재감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노무현 정부 시절 과학기술혁신본부까지 부활했지만 정부 연구개발 예산은 정체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정부의 연구 지원 방식도 실패 위험을 무릅쓰고 파격적인 실험에 잇달아 나서는 민간 연구재단에 뒤처지는 지경이다.

문재인 정부를 상징하는 부처로 ‘제2 벤처 붐’ 기대 속에 출범했지만 최저임금, 근로시간 단축 등의 뒤치다꺼리에 허우적대는 중소벤처기업부도 말이 아니다. 한계상황으로 내몰리는 중소기업이 급증하고 있지만 경쟁력 제고는 먼 과제가 되고 있다. ‘청’에서 ‘부’로 승격한 뒤 달라진 게 뭔지 모르겠다는 불만도 터져 나온다.

산업·과학 부처들은 문재인 정부 들어 하나같이 ‘마이너리그’로 강등당한 모습이다. 연구개발 투자 세액감면 혜택을 줄이는 기획재정부, 대기업 벤처 투자를 위한 ‘기업 주도형 벤처캐피털(CVC)’을 허용하지 않는 공정거래위원회, 가상화폐 거래에 강경한 금융위원회, 바이오기업 연구개발 투자에 획일적인 회계처리 지침을 들이대는 금융감독원 등에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실정이다.

산업의 출구가 막혀 있다는 측면에서 보면 갈수록 심각해지는 고용 위기는 ‘예고된 재앙’이나 다름없다. 당장의 표를 의식한 정치권이 구조조정을 지연시켜온 필연적인 결과라는 점에서 그렇다. 터질 게 터졌다고 생각하면 “지난 정권들의 탓”이라는 더불어민주당 주장이 틀렸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지금의 여당이 야당 시절 구조조정에 무조건 반대했을 뿐만 아니라 산업 재편을 위한 규제개혁의 발목을 잡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그들도 ‘공범’이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가 출범 후 앞선 정권과 다르게 산업의 출구를 찾기 위해 특별히 발버둥 쳐 왔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오히려 주력 산업들이 더는 버티기 어려워 하나둘 무너지는 판국에 정부 여당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고 말았다.

당장의 충격보다 이대로 가면 고용 위기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가능성이 없다는 게 더 심각한 문제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몇 개월만 기다려 달라”고 했지만 국민은 정부 대응이 미봉책인지, 아닌지를 금방 알아본다. 하루가 멀다 하고 선심성 자영업 대책을 쏟아내는 정부가 아니라, 자영업 말곤 갈 곳이 없는 상황을 타개하려 애쓰는 정부를 보고 싶은 것이다. 지금이라도 문재인 정부가 신산업 등 산업 재편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비전과 의지를 보여주고 구조조정의 고통을 다 같이 분담하자고 호소하면, 몇 개월이 아니라 몇 년도 참아 낼 국민이다.

a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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