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부담·고급여 구조여서 적립기금 고갈은 필연
일단 급여 수준 낮춘 뒤 보험료율 높여나가야
공무원연금 등 직역연금 아우르는 큰 개혁 절실
김용하 < 순천향대 교수·경제학 >
제4차 국민연금 재정 계산 결과와 제도 개선 방안이 지난 17일 나왔다. 현재 635조원인 국민연금 기금이 2041년 1778조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급격히 감소해 2057년이면 완전히 고갈된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3차 계산(2013년) 때보다 고갈 시점이 3년 앞당겨졌다.
보건복지부 장관 자문 역할을 맡은 제도개선위원회는 기금 고갈을 늦추기 위해 두 가지 안을 내놨다. 연금 지급률(소득대체율)을 현행 40%에서 45%로 높이되, 연금 보험료율은 소득의 9%에서 11%로 2%포인트 인상하는 것이 1안이다. 2안은 지급률은 40%로 두되 보험료율을 향후 10년간 4.5%포인트 높이고, 연금 지급 개시 연령은 65세에서 67세로 단계적으로 늦추는 안이다. 복지부는 다음달 최종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적립기금 소진은 국민연금 제도가 ‘저부담·고급여’ 구조로 처음 설계됐을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1986년 국민연금법을 제정할 때 낸 것보다 3.1배 더 받도록 돼 있던 것을 1999년 1차 개편 때 2.7배로, 2007년 2차 개편 때 2.2배로 낮춘 뒤 2028년 1.8배까지 하향 조정 중이지만 저부담·고급여 구조는 여전하다. 이 때문에 부담 대비 급여 구조를 가능한 한 빨리 균형 수준으로 낮추지 않으면 적립기금 고갈은 막을 수 없다.
적립기금이 없어지는 순간 매년 노인세대에게 지급해야 할 연금은 근로세대의 보험료로 바로 조달하는 ‘부과방식’으로 전환된다. 부과방식은 유럽 대부분의 연금 선진국에서 시행하고 있어 한국도 따라 하면 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2018년 우리나라 노인 인구 비율은 15% 수준이지만 2060년엔 40% 정도로 높아진다. 노인 인구 비율이 30% 안팎에 머물 것으로 예상되는 유럽 국가들과 상황이 다르다. 우리의 경우 2060년이 되면 근로세대 한 명이 노인세대 한 명을 부양해야 해 보험료율이 26.8%로 치솟아 지속 가능한 수준을 넘는다. 국민연금법 제정 당시엔 우리나라에서 초저출산을 동반한 고령화가 이렇게 급속히 진행될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제도개선위는 대안으로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1%(1안) 또는 13.5%(2안)로 인상할 것을 제시했지만 부족한 수준이다. 부담 대비 급여를 균형 수준으로 맞추려면 보험료율을 16%까지 인상해야 하고, 가능한 한 빨리 인상하지 않으면 보험료율이 30% 안팎까지 올라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알리지 않았다. ‘보험료율 16%’는 받는 만큼 내는 수준이지만, 그 이상이 되면 국민연금에 가입하는 것이 오히려 손해가 된다. 국민연금에 가입할 이유가 없어진다는 의미다.
그동안 국민연금은 두 차례, 공무원연금은 네 차례 개편이 있었다. 가장 다른 점은 국민연금은 연금 급여수준을 낮추는 방식으로 이뤄진 반면 공무원연금은 연금 보험료를 높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국민연금 급여는 43% 줄었고, 공무원연금 보험료는 다섯 배가 됐다. 결과적으로 국민연금은 보험료율은 9%를 유지하고 급여율은 40% 수준으로 낮아졌다. 반면 공무원연금은 보험료율은 18%로 높아지고 급여율은 61.2%로 낮아졌다.
돌이켜볼 때 국민연금 개혁 방식이 공무원연금에 비해 적절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보험료율과 급여를 동시에 균형 수준으로 맞추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어렵다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으로 급여를 먼저 낮추고, 보험료율을 나중에 높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보험료를 내면 이에 대한 수급권이 발생하기 때문에 일단 수급권을 낮춰야 장기적으로 재정 부담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공무원연금이 보험료율 인상을 먼저 택한 것은 단기적 재정 효과를 위한 것이었다.
정부는 이번 개혁이 마지막이 될 수 있도록 국민연금을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노후소득 보장 제도로 재설계해야 한다. 또 기초연금, 퇴직연금과 공무원연금을 포함한 직역연금을 아우르는 큰 개혁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연금 개혁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로 표현될 정도로 정권이 사활을 걸고 추진해도 될까 말까다. 단기 성과만 바라보는 정치권으로선 앞장서기 쉽지 않지만 국민 눈높이가 높아지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