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발 경제 위기 가능성이 세계 증시와 환시를 흔들고 있습니다.
터키는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규모(2018년 GDP 추정치, 8495억달러)가 1% 밖에 안되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왜 세계가 출렁이고 있을까요.
월스트리트에서는 터키를 ‘탄광속의 카나리아’로 보는 애널리스트들이 많습니다. 신흥시장국들의 크레딧을 나타내는 척도라는 겁니다.
터키는 이머징 국가 중에서도 해외 자본 의존도가 높은 나라입니다. 브라질처럼 원자재가 많은 나라가 아니어서 수입 규모(2017년 2343억달러)로 수출(2017년 1571억달러)을 항상 초과하기 때문에 막대한 무역수지 적자를 해외 자본을 유치해 메우는 구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유럽이 긴축에 돌입하면 가장 먼저 위기를 겪었습니다.
이번 터키 리라화 폭락 사태도 미국의 제재와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으로부터 촉발됐지만 실제는 미국이 2016년 말부터 통화 긴축에 돌입하고, 유럽과 일본도 최근 긴축 움직임을 보이는 게 근본적 배경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이런 터키 류의 신흥국이 아시아에서는 말레이시아, 아프리카에서는 남아공 등입니다. 세계 긴축 초기에 어려움을 겪는 단골들입니다.
터키 등에서 신흥국 위기 가능성이 불거지면 월스트리트 회사들은 이머징마켓 자산을 재점검합니다. 이들은 신흥시장에 투자할 때 각 나라별로 투자하기 보다 신흥국 전체를 묶어 투자하기 때문에 '카나리아' 터키가 흔들리면 다른 이머징마켓에서도 자금 유출이 본격화될 수 있습니다. 남아공,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의 환율이 흔들리고 있는 이유입니다. 빅터 샤벳 맥쿼리 상품 및 글로벌 시장 전략가는 “무역 붕괴와 유동성 감소, 미 달러화 상승과 중국 위안화 하락의 조합은 이머징 마켓에 치명적일 수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터키가 방아쇠를 제공 할 수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유럽도 영향권에 들어 있습니다. 터키 등에 익스포저가 많은 유럽 은행들은 리스크를 반영해 대출을 조이기 시작할 겁니다. 이런 움직임은 전반적인 금융시장 환경을 악화시켜 유럽 경기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미국도 아주 자유롭진 않죠. 신흥국 위기가 나타난다는 건 달러가 강세를 보인다는 얘기와 같습니다. 달러인덱스는 지난 금요일 급등해 96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작년 5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강달러가 지속되면 세계 시장을 상대로 하는 미국의 대기업들은 실적에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13일(현지시간) 뉴욕 증시에서 대기업들로 이뤄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가 나스닥보다 더 많이 내린 이유입니다.
이번 터키 위기는 신흥국 전체로 전염되면서 세계 경제를 침체에 몰아넣을까요? 아직은 아무도 모릅니다만 뉴욕 증시 하락폭이 이날 0.5% 수준에 그친 것을 감안하면 아직은 크지 않다고 보는 이들이 많은 듯 합니다.
사실 위기가 한 방에 터지진 않죠. 조금씩 조금씩 누적되다가 혁신을 거부하는 나라는 대형 위기를 겪을 것입니다.
월스트리트는 이번 터키발 위기가 시간이 흐르며 잦아들더라도 앞으로 Fed 등이 긴축을 강화할 때마다 이같은 위기 가능성이 '좀비'처럼 주기적으로 되살아나 시장을 괴롭힐 것으로 봅니다.
터키처럼 해외 의존도가 높은(물론 무역수지는 흑자지만) 한국도 미국과 유럽, 일본의 긴축 행보에 맞춰 해외 자금이 유출될 수 있다는 걸 예상하고 경제를 운용해야할 겁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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