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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만의 청년 창업 이야기 ④) 카이스트 나와서 왜 돼지고기를 팔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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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만 중소기업부 기자) “카이스트 나와서 왜 돼지고기를 팔아요?”

김재연 정육각 대표가 사람들을 만날 때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많은 사람은 카이스트에서 수학을 전공한 청년이 돼지고기에 빠진 이유를 궁금해한다. 김 대표는 “한마디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답한다. 그는 “카이스트에서 수학을 전공하면 금융권에 가거나 대학원에 진학해서 교수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그게 적성에 맞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한국과학영재학교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KAIST)에서 수리과학(09학번)을 전공했다. 2016년 2월 정육각을 창업하기 전까지는 미국 국무성 장학생으로 유학을 떠날 예정이었다. 유학을 앞두고 좋아하는 돼지고기를 찾아 전국을 여행한 것이 창업으로 이어졌다.

큰 포부나 거창한 목표를 두고 사업을 시작한 게 아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누구보다 돼지고기를 좋아했다”며 “창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돼지고기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유학 전 8개월 동안 맛이 좋은 고기를 찾기 위해 정육점과 시장, 마트를 돌아다녔다. 돼지고기를 맛있게 먹는 방법을 연구하고 싶어 전국에 있는 식당을 돌아다니면서 구이법도 연구했다.

그러다 결국 도축장까지 갔다. 도축장에서 도매단위의 삼겹살을 통으로 사서 지인들에게 판매한 것이 사업의 시작이었다. 경기도 안양에 가게를 얻어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주문을 받아 팔았다. 자신이 찾은 ‘돼지고기 맛’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아르바이트하면서 유학을 위해 저축해 둔 500만원이 자본금이었다.

정육각은 도축한 지 4일 이내의 신선한 돼지고기를 온라인으로 판매한다. 서울 지역은 오전에 주문하면 당일 저녁까지 받아볼 수 있다. ‘신선한 돼지고기가 더 맛있다’는 김 대표의 생각이 담긴 시스템이다. 기존 축산 유통 시스템에서 냉장육은 진공 포장 상태로 유통되는 기간은 최대 45일에 달한다. 이 기간을 혁신적으로 단축했다.

정육각에서 판매하는 초신선 식품은 소고기, 닭고기, 우유, 계란, 쌀 등으로 늘어났다. 모두 농장과 직접 계약해 소비자에게 도달되는 시간을 최단시간으로 줄였다. 농장에서 닭이 오전에 낳은 계란이 저녁에 가정으로 배달되는 식이다.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대부분의 축산 전문가들은 부정적이었다. 기존 유통의 관행을 깨기는 어려울 것이란 평가가 많았다. 온라인으로 고기를 판다는 것도 생소했다. 일부 냉동 고기 정도만 온라인에서 판매되고 있을 때였다. 김 대표는 “사업을 시작할 당시에는 관련법도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았다”며 “사업을 허가해주는 담당 공무원도 고개를 갸우뚱할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정육각은 단순하게 온라인으로 식품을 파는 회사가 아니다. 자체 물류 공장을 갖춰 수학과 IT를 유통에 활용한다. 고객의 주문이 들어오면 제품 생산과 포장에 들어가는 자동발주 시스템을 개발했다. 정육점에서 정확한 무게만큼만 요금이 부과되는 시스템을 온라인으로 그대로 옮겨왔다. 20여명의 직원 중 3분의 1 이상이 IT 개발자인 이유다. 식품업계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다. “온라인 주문부터 가공, 포장, 배송의 모든 과정이 IT를 활용한 자동화 시스템으로 돌아간다”고 김 대표는 설명했다.

미국 유학길을 접고 돼지고기 유통 사업의 길로 들어섰을 때 주변 반응이 궁금했다. 김 대표는 “동업자를 구하기 위해 주변에 친구들에게 제안하면 ‘그걸 대체 너랑 왜 하냐'는 반응이 돌아오곤 했다”고 했다. 부모님도 “유학 가기 전에 몇 달 동안 하다 말겠지”라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맛있다고 생각하는 돼지고기를 시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일지 너무 궁금했다”고 말했다. 6개월 간 반응이 없으면 사업을 접을 생각도 있었다. 첫 번째 창업을 통해 얻은 경험에서 기반한 생각이었다.

정육각은 김 대표의 두 번째 창업이다. 2012년 대학교를 휴학하고 자연어 처리를 특화한 서비스 개발을 한 경험이 있다. 그는 “사업자 등록을 내고 창업했지만 매출은 하나도 발생하지 않았다"며 “사업을 할 때는 시장의 반응과 매출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된 경험”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창업에 관심을 가지는 주변 사람들에게 ‘실행력'을 자주 이야기한다. 그는 “좋은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은 많지만,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경우는 드물다"며 ”아이디어가 사업으로 연결되기 위한 가장 큰 연결 고리는 실행력"이라고 말했다. (끝) / m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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