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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주사 규제 발 묶인 대기업, 벤처투자까지 해외로 내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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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성장전략 오픈이노베이션
(3·끝) 스타트업 M&A 활성화 걸림돌

금산분리 막혀 CVC 설립 못해
기업들 독립법인 세워 우회 투자

스타트업 성장 10년은 걸리는데
대기업에 매각되고 7년 지나면
계열사 편입돼 '규제 벽'만 높아져

손자-증손회사 지분 규정도 부담
현금 쌓여 있어도 투자 어렵게 해



[ 김기만/김진수 기자 ] 20년 전부터 제조업은 해외로 빠져나갔다. 대기업 공장부터 시작했다. 협력업체가 따라갔다. 지금은 중견 중소기업 가리지 않고 해외로 나간다. 제조업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대기업들의 벤처기업 인수합병(M&A) 투자도 일제히 해외로 향하고 있다. 삼성 LG 현대자동차 모두 마찬가지다. 대기업이 벤처기업을 인수하고, 지분을 판 기업가가 또 다른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설립해 혁신을 가속화하는 오픈이노베이션의 선순환 고리 중 가장 중요한 축이 빠져 있는 셈이다. 대기업 확장에 대한 부정적 여론만이 문제가 아니다. 수많은 규제가 이들을 해외로 내몰고 있다.


“대기업 지주회사에 CVC 허용해야”

LG그룹은 지난달 LG전자·LG화학 등 주력 계열사 네 곳이 4000억원가량을 모아 스타트업 투자회사인 LG테크놀로지벤처스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 설립했다. 김동수 전 삼성벤처투자 부사장이 대표를 맡아 첨단 정보기술(IT) 분야 투자와 인수를 담당한다. 재계 관계자는 “미국 실리콘밸리가 유망한 스타트업을 발굴하기 좋은 곳이지만 지주사 규제에 묶인 것도 LG그룹이 해외에 투자회사를 설립한 이유”라고 말했다.

대기업은 벤처기업 인수에 소극적이다. 가장 많이 지적하는 것이 지주회사 규제다. 지주회사가 벤처캐피털(CVC) 회사를 설립해 스타트업 투자와 M&A를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CVC를 금융계열사로 인식하는 ‘금산(금융·산업자본) 분리 규정’ 때문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일반 지주회사는 금융계열사에 속하는 CVC, 창업투자회사 등을 계열사로 둘 수 없다.

국내 대기업은 규제를 피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다른 방법을 택하고 있다. 지주회사 대신 대주주나 지주회사 밖에 있는 관계사가 지분을 투자하는 방식이다. 롯데그룹의 롯데액셀러레이터는 신동빈 회장, 롯데지주·롯데케미칼 등이 출자해 세운 독립법인이다. 코오롱인베스트먼트의 대주주도 코오롱차이나와 이웅열 회장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자산총액과 지주비율 요건 완화 등 벤처지주회사 개편안을 담은 벤처투자 활성화 방안을 다음달 발표할 계획이다. 다만 기획재정부와 공정위는 벤처업계에서 줄기차게 요구해온 CVC 허용을 이번 활성화 방안에 넣지 않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벤처지주회사 개편만으로는 벤처·스타트업을 활성화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글로벌 플레이어인 대기업의 벤처 투자가 활성화할 수 있도록 관련 부서를 설득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치권에선 벤처기업인 출신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관련법이 발의돼 있다.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여당 국회의원 21명은 지난달 대기업 지주회사가 벤처캐피털을 자회사로 둘 수 있도록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정민 벤처기업협회 혁신벤처정책연구소 부소장은 “벤처기업이 자금을 원활하게 마련하기 위해 대기업의 벤처 생태계 접근을 허용해줘야 한다”며 “‘일감 몰아주기’와 같은 문제가 우려된다면 강력한 사후 규제를 적용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기업 성장하려면 최소 10년 필요

공정거래법에서는 대기업이 벤처기업을 인수했을 때 각종 규제가 따르는 대기업집단 편입을 7년간 유예하고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피인수 기업이 충분히 성장하기 위해 편입 유예 기간을 10년으로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마저 편입 유예 대상을 M&A할 시점에 ‘매출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비중이 5% 이상인 중소기업’ ‘벤처기업법상 벤처기업’으로 한정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대기업이 우수한 기술을 보유한 기술혁신형 중소기업(이노비즈)을 인수하면 계열사 편입 유예를 적용해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래야 ‘벤처다움’을 잃지 않고 혁신을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 지주사의 손자회사는 증손회사 지분을 100% 확보해야 한다는 조항도 벤처 M&A 활성화를 막는 규제로 꼽힌다. SK하이닉스가 대표적이다. SK하이닉스는 SK텔레콤의 자회사이자 지주사인 SK의 손자회사다. 따라서 SK하이닉스가 기술력 있는 벤처기업을 인수하려면 지분 100%를 통째로 사야만 한다. 스타트업 지분투자도 불가능하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현금성 자산 7조3793억원(단기금융상품 포함)을 보유하고 있는 SK하이닉스는 미래 기술개발을 위한 오픈이노베이션이 불가능한 상황에 처해 있다.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기업집단 내 설립되는 벤처캐피털. 창업기업에 자금을 투자하고 모기업의 인프라를 제공해 창업기업이 성장 기반을 마련하도록 지원.

김기만/김진수 기자 m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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