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성이 높아져야 임금도 오르는 법인데
우리는 '저절로' 얻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을 뿐
경제는 지금 사면초가 상황
현실 직시하고 돌파구 찾아야"
노대래 < 법무법인 세종 고문·前 공정거래위원장 >
내년도 최저임금이 10.9% 오른 시간당 8350원으로 결정된 후 온 나라가 시끄럽다. 소상공인들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겠다며 ‘불복종’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현 정부가 소득주도성장 공약을 폐기한 것”이라고 반발했고, 참여연대도 “프랜차이즈업계의 불공정 거래구조를 개선하고 영세상인이 겪는 임차료, 카드수수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저임금제 때문에 영세상인들이 어려워졌다고 보고 다른 비용 완화를 주장하는 것 같은데, 그쪽 시장도 사정이 있기 때문에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급기야 대통령까지 나서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은 어렵게 됐다”며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어렵게 내린 결정인 만큼 노·사·정 모든 경제주체가 함께 노력해 달라”고 했다.
그렇다. 합심이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까지 덜 받아 왔다”는 근로자 측과 “지금 수준도 견디기 어렵다”는 사용자 측이 쉽게 물러설까? 돈과 집단의 이해가 달린 문제라서 쉽지 않아 보인다. 대통령 말대로 인상폭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경제의 감당 능력이다. 감당할 수 없으면 어떻게 하겠다는 얘기는 없었지만, 무조건 강행할 기세는 아닌 것 같다.
2002년 월드컵 때다. 당시 슬로건은 ‘꿈은 이루어진다’였다. ‘노력하면’이란 문구가 빠졌는데, 항상 빠진 채로 쓰다 보니 ‘저절로’ 이뤄지는 게 꿈인 양 착각한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 선수들은 얼마나 고된 훈련을 하는가. 경제도 마찬가지다. 임금은 후행변수다. 높은 임금은 좋지만 생산성 향상 노력이 선행될 때 얻어지는 결과변수다.
한편 소득주도성장의 추동 기반이 약화되자 우려의 소리도 나온다. 소득주도성장을 총괄했던 경제수석이 물러나고 정통 관료로 대체됐음을 강조한다. 재정개혁특별위원회의 금융소득 과세 강화를 기획재정부에서 거부했고, 부동산 세제개편안도 부담이 밋밋한 안을 채택했다고 비난한다. 재벌개혁 당국자가 “경제 성과가 없다”고 초조해하면서 재벌 총수들에게 변화를 읍소하고,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에게 국내 일자리를 부탁했다며 못마땅해하기도 한다.
설마하던 미·중 ‘무역전쟁’이 현실화됐다. 중국의 대미(對美) 수출이 타격을 받고 결국 우리에게 부담으로 올 것이다. 중국이 올 하반기부터 메모리 반도체를 양산한단다. 대(對)중국 반도체 수출 의존도가 60% 이상인 우리 경제에 또 다른 부담 요인이다. 금리, 환율, 국제 유가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가뜩이나 일자리가 줄고 분배구조도 악화됐다. 청년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주려면 매년 30만 개 이상 늘어나야 하는데 지금은 고작 10만 개 미만이다.
예전에는 경제 상황이 이쯤 되면 경제부총리와 청와대가 함께 나서서 대책마련에 올인했다. 대통령이 경제주체들의 분산된 경제심리를 다독거렸다. 경제현안 점검회의나 민생대책회의, 민관합동회의 등을 대통령이 주재하면서 메시지를 전했다. 대통령의 회의 주재에 대해 찬반 논의가 있기는 하지만 이해가 얽힌 문제나 국론 분열 이슈, 국민들의 불안감 해소에는 가장 효과적이다. 요즘엔 서별관회의는 아예 없어졌고, 대통령 주재 경제대책회의도 드물다. 이런 상급 조정회의가 줄어들면 개별 부처 입장만 반영한 불완전한 정책이 양산되고, 비선라인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커진다. 정부 부처나 기관 간 정책 다툼도 자주 일어난다.
그간 연간 20조원을 웃도는 초과 세수가 정책 운용에 요긴했으나 내년부터는 녹록지 않을 것 같다. 반도체 2개사의 법인세 증가(약 7조2000억원)가 효자 노릇을 했는데, 중국이 양산에 돌입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양도소득세 증가도 지난 4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실시에 앞서 일시적인 부동산 거래 증가 때문이다. 대기업들도 반도체 이외 분야는 실적이 좋지 않아 양질의 일자리가 줄고 있는 상황이다.
혹자는 우리 경제가 언제 순탄할 때가 있었느냐고 반문하지만, 지금은 마찰적 고통이 아니다. 수출 주도 품목들이 전부 불안하고 경제·사회 모든 영역에서 구조적인 문제들이 표출되고 있다. 제조업에서 퇴출되면 자영업이란 출구라도 있었는데 이젠 그 시장마저 닫히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 현실을 직시하는, 살아남을 수 있는 정책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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