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 기자의 컬처 insight
[ 김희경 기자 ]
tvN 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사진)와 영화 ‘신과 함께-인과 연’엔 공통점이 있다. 두 작품은 모두 대중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달 6일 처음 방영된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톡톡 튀는 스토리와 배우 박서준, 박민영의 열연 덕에 시청률 8%대를 기록했다. ‘신과 함께’는 지난해 개봉한 1편이 관객 1441만 명을 동원한 데 힘입어 후속편 ‘인과 연’이 제작됐다. 다음달 1일 개봉을 앞두고 벌써 화제다.
다음 공통점은 두 작품 모두 원작이 따로 있다는 점이다.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정경윤 작가의 동명 웹소설이, ‘신과 함께’는 주호민 작가의 웹툰이 원작이다.
원작에도 공통점이 있다. 한 장르가 아니라 여러 장르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웹툰으로도 나왔는데, 원작 5000만 뷰의 4배에 달하는 2억 뷰를 넘어섰다. 드라마가 제작된 데는 웹툰 인기가 영향을 미쳤다. ‘신과 함께’는 뮤지컬로도 제작됐다. 2015년 초연과 2017년 재연에서 모두 100%에 가까운 평균 좌석 점유율을 기록했다.
‘콘텐츠 OSMU 시대’가 열렸다. OSMU는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의 줄임말이다. 하나의 지식재산권(IP)을 드라마, 영화, 뮤지컬 등 다른 장르로 확대·재생산하는 것을 뜻한다. 2000년대 들어 이런 시도는 있었지만 한 장르에서만 시도되고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최근 들어 다양한 장르에 동시다발적으로 파생되는 ‘멀티 장르화’가 이뤄지고 대중적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선 스토리노믹스 주요 전략으로 OSMU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해리포터’다. 이 작품은 소설에서 출발해 영화로 제작돼 세계적인 흥행을 거뒀다.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게임, 캐릭터, 테마파크까지 개발됐다. 그렇게 만들어낸 해리포터 부가가치는 308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후 ‘반지의 제왕’ ‘어벤져스’ 등도 같은 방식을 통해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멀티 장르화에서 한참 뒤처졌던 국내 시장에서 분위기가 바뀐 것은 웹콘텐츠의 발달 덕분이다. 웹툰, 웹소설 등 웹콘텐츠는 ‘스토리 리부트(story reboot)’를 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원작 내용을 다양한 형태로 변형시키는 것이다. 기존 작품들은 닫힌 결말로 끝나거나 캐릭터에 새로움을 더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반면 웹콘텐츠는 확장성이 뛰어나다. 특히 웹툰은 매우 자유분방하게 스토리가 이어져 대중의 상상력을 더욱 자극한다.
영화, 드라마 등 제작자들에게 OSMU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기존 스토리를 재가공하기 때문에 창작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웹콘텐츠를 이용하는 이들이 빠르게 늘어나 흥행에도 유리하다. 이미 일정한 인지도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2차 가공물을 잘 만들면 대중에게 주는 각인 효과도 더욱 크다. 익숙한 데 색다르기까지 하다고 느끼는 ‘친숙한 놀라움’을 선사한다고 할까.
대중도 이젠 다른 관점에서 2차 가공물을 즐기기 시작했다. 과거엔 원작과 얼마나 똑같이 만들었는지 비교하기 바빴다. 최근엔 새롭게 탄생한 작품의 내용과 수준에 더 집중한다.
OSMU는 다른 장르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주호민 작가의 웹툰 ‘무한동력’을 지난 4월 뮤지컬로 선보인 김동연 연출은 원작에 없던 장면을 만들었다. 취업준비생인 주인공 선재가 경쟁자들과 면접을 보는 장면을 새롭게 꾸몄다. 선재 친구들은 그 광경을 실제 보고 있는 것처럼 옆에 서서 스포츠 경기처럼 실시간 중계했다. 현실을 그리는 뮤지컬에 웹툰적인 요소를 가미한 것이다. 김 연출은 “‘웹툰의 뮤지컬화’보다 ‘웹툰을 더 웹툰답게’ 만들려 했다”며 “그랬더니 오히려 가장 뮤지컬답고 재밌는 무대가 됐다”고 말했다.
‘어벤져스’ 등을 제작한 마블의 케빈 파이기 제작담당 사장은 스토리노믹스의 비결로 ‘스크램블(scramble)’을 꼽는다. 콘텐츠를 연결하고 섞으라는 얘기다. 파이기 사장은 “무수히 많은 다른 세계의 점들을 연결해 섞어야 하며 마블의 힘도 여기에서 나온다”고 강조한다. 국내에서도 이제 거미줄처럼 연결이 이뤄지고 있다. 잘 섞어진 콘텐츠들의 잇따른 탄생이 기대된다.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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