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북한 비핵화 과정을 서두르지 않겠다고 했다. 북핵 해법 찾기가 ‘장기전’으로 바뀌는 모양새로, 자칫하면 북한의 핵 보유가 그대로 굳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러정상회담에 앞서 미국 CBS 방송과 인터뷰에서 ‘6·12 미·북정상회담 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회담 결과를 이행하기 위해 얼마나 빨리 움직이고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나는 정말로 서두르지 않는다”며 “그러는 동안 막후에서 아주 긍정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미·러 정상회담 후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도 “우리가 북한과 잘하고 있어서 아직 시간이 있다. 수년간 계속된 일인 만큼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이번뿐이 아니다. 지난 13일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와의 공동 기자회견에서도 “그것은(북한 비핵화는) 과정이다. 아마도 사람들이 바라는 것보다 더 긴 과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노스다코타주 정치집회에서도 북한의 비핵화 과정을 칠면조 요리에 빗대 “(비핵화를)서두르면 스토브에서 칠면조를 서둘러 꺼내는 것과 같다”며 “더 서두를수록 나쁘고, 더 오래 할수록 더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미·북 정상회담 준비 초기만해도 속전속결식 북핵 해결을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1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을 백악관에서 접견한 뒤 속도 조절을 시사했고 지난달 12일 미·북 정상회담 이후에는 ‘서두르지 않겠다’는 식의 말을 부쩍 자주하고 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협상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현실’을 깨달은데 따른 것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북핵 리스트 작성과 신고, 이행절차 규정, 검증의 어려움을 감안할 때 단기간에 북핵 문제를 풀기 어렵다는 인식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단계적·동시적 행동을 요구하는 북한에 맞서 ‘조속한 핵폐기’ 요구를 과도하게 밀어붙였다간 자칫 ‘판’이 깨질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결국 북핵 협상을 최대한 신중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북한의 비핵화 의지와 진정성에 대해서도 잇따라 의혹이 제기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북한이 미·북 정상회담을 전후해 미국과 비핵화 협상을 벌이면서도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미사일 제조공장을 확장한 정황이 포착됐다고 지난 1일 보도했다. 전날엔 워싱턴포스트(WP)와 NBC방송이 각각 ‘북한이 핵탄두와 미사일을 은폐하려고 하고 있다’거나 ‘북한이 최근 몇 개월 새 농축우라늄 생산시설을 늘렸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북한은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지만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전 미 행정부가 북핵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했다고 비판했지만, 결과적으론 비슷한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