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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권의 호모글로벌리스 (3)] 무비자 해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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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철이다. 해외를 여행하는 우리 국민이 급증하고 있다. 작년에는 해외여행객 수가 2650만 명에 달했다. 오늘날 우리 국민은 비자 없이도 많은 나라를 여행할 수 있다. 비자 면제 협정 때문이다. 수년 전만 해도 비자를 받기 위해 대사관 앞에서 오랜 시간을 기다렸던 분들은 요즘 해외여행이 얼마나 간편해졌는지를 실감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외국을 방문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랐다. 외국인이 간첩활동이나 위법행위를 함으로써 국가안전에 위협이 되지 않을까 의심하기가 일쑤였다. 그래서 생긴 것이 여권과 비자제도다.

‘패스포트(passport)’라는 단어는 ‘항구를 통과하다’라는 의미의 ‘파수스 포르투스(passus portus)’라는 라틴어에서 나왔다. 여권의 전신인 통행증은 기원전 1세기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처음으로 발급했다. 당시 통행증에는 다음과 같은 경고문이 쓰여 있었다. “땅 위에서건 바다 위에서건 이 여행자를 괴롭히려는 사람이 있다면 로마 황제와 겨룰 만큼 강한지를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당시 해외여행이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한국 여권 파워 세계 1위

비자는 외국인에게 입국을 허가하는 증명을 말한다. 입국 사증이라고도 한다. 비자 제도는 제1차 세계대전 중 스파이의 입국을 방지하기 위해 확산됐다. 오늘날에는 보안, 위생, 노동, 이민 등 국가이익과 안전을 해칠 우려가 있는 사람의 입국을 제한하기 위해 발급하고 있다. 글로벌 인적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요즈음 입국할 때마다 허가를 받아야 한다면 번거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이유에서 비자 없이 단기간 입국을 허용하기로 합의한 것이 비자 면제 협정이다.

캐나다 금융자문업체 아톤캐피털이 지난 2월 세계 199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여권 파워 랭킹’에서 한국은 싱가포르와 함께 공동 1위를 차지했다. 비자 없이 방문할 수 있거나 도착 후 즉석에서 비자를 받을 수 있는 나라 수에 따라 순위를 매긴 결과다. 한국은 꾸준히 상위권을 차지했지만 1위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위 그룹은 독일과 일본, 3위 그룹은 덴마크와 핀란드 등 6개 유럽국이 차지했다. 중국은 65위, 북한은 87위였고, 최하위는 아프가니스탄이었다.

이에 따르면 한국인이 무비자로 여행할 수 있는 국가 수는 총 162개국에 달한다. 그만큼 한국이 국제사회로부터 받는 신뢰도는 높다. 도난 또는 분실된 한국 여권이 종종 불법체류자의 밀입국 또는 신분 위장용으로 사용되는 것도 우리 여권이 지닌 파워를 상징한다.

비자 없이도 사람과 상품이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 수 있도록 제도화한 것이 바로 솅겐 협정이다.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22개국(영국 아일랜드 불가리아 루마니아 키프로스 크로아티아 제외)과 비(非)EU 회원국인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위스 리히텐슈타인 등 총 26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솅겐 협정이 가져온 혜택은 상당하다. 매년 13억 명과 5700만 대의 화물차가 통관 절차 없이 국경을 통과한다. 매일 17만 명이 국경을 넘어 출퇴근한다. 솅겐 협정은 유로화라는 단일 통화와 함께 하나의 유럽을 지향하는 유럽통합의 상징이자 근간이다. 그러나 대규모의 난민 유입과 테러 위험 때문에 최근 일부 국가가 국경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솅겐 협정 모델을 적용하고자 하는 또 다른 대륙이 있다. 바로 아프리카다. 2016년 아프리카 연합이 단일 아프리카 여권을 발급했다. 2063년까지 12억 인구의 아프리카를 사람, 자본, 상품 및 서비스가 자유롭게 이동하는 대륙으로 만들겠다는 원대한 계획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미국인보다 아프리카인이 아프리카를 여행하기가 더 어렵다. 아프리카에서 솅겐의 꿈은 내전, 불법이민, 기아 등 전반적인 사회·경제적 여건이 개선돼야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솅겐지역 90일까지 무비자

해외여행을 할 때에는 아래 사항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첫째, 리비아 시리아 예멘 이라크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 등 정부가 정한 여행금지국가에는 여행을 자제해야 한다. 생명은 우주보다 더 소중하다. 둘째, 솅겐 협정은 역외국 국민에게도 적용된다. 협정은 솅겐국 출국 예정일로부터 역산해 180일 기간 중 90일까지 무비자로 솅겐 지역을 여행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대부분의 여행객에게는 충분한 기간이다. 그러나 유럽을 자주 방문하거나 장기간 여행을 고려 중이라면 사전에 방문 국가와 체류 일수를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복수의 국가를 여행할 때는 체류를 증명할 수 있는 항공권, 기차표, 숙박 영수증 등을 버리지 말고 소지하는 게 좋다. 또한 위조 여권으로 오해받을 수 있으니 여권에는 반드시 서명해야 한다. 휴식과 치유를 위한 여행이 방해받지 않도록 사전에 철저하게 대비하는 것도 여행의 기술이다.

박희권 < 글로벌리스트·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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