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세 경영시대 본격화
이재용·정의선 부회장 등
젊고 창의적 리더십 앞세워
사업구조·경영체질 빠르게 재편
LG도 40세 구광모 회장 체제로
정기선 부사장·김동관 전무 등
보폭 넓히는 3세도 늘어
지배구조 개편·성장동력 발굴 등
국내외 만만찮은 과제도 수두룩
[ 좌동욱/장창민 기자 ] 한국을 대표하는 간판 그룹들이 ‘창업 3·4세 오너’ 체제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외아들 구광모 LG전자 상무(40)가 지난달 29일 예상을 깨고 파격적으로 그룹 회장에 오르면서 오너가 있는 국내 10대 그룹(공기업 제외) 가운데 ‘3·4세 경영’의 닻을 올렸거나 오너 2·3세가 경영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는 기업들이 주목받고 있다. 2015년 만 70세이던 10대 그룹 오너의 평균 나이도 올 들어 60세로 10세 낮아졌다. 한층 젊어진 오너 및 최고경영자(CEO)들 앞에는 지배구조 개편과 신성장동력 발굴, 반(反)기업정서 극복 등 만만치 않은 과제가 던져졌다는 분석이다.
40~50대가 주축으로 떠올라
주요 기업의 새 오너들과 CEO들은 창업 과정을 함께 겪은 1·2세대와 달리 대부분 해외 명문대학에서 유학했으며 글로벌 혁신 기업을 벤치마킹하려는 성향을 보인다는 게 재계의 평가다. 앞으로 수년간 국내 간판 기업의 경영 시스템과 문화가 크게 바뀔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이들 젊은 경영인의 리더십이 향후 한국 기업과 경제의 성패를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50)은 지난 2월 뇌물공여죄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 와병 중인 부친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총수 역할을 하고 있다. 대기업 정책을 총괄하는 공정거래위원회는 5월 삼성그룹 총수(동일인)를 이 회장에서 이 부회장으로 바꿨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48)은 올 들어 아버지인 정몽구 회장을 대신해 경영 전면에 나서고 일이 부쩍 늘었다. ‘40세’ 구광모 회장을 맞은 LG그룹은 ‘4세 경영’의 막을 올렸다. 재계 5위 롯데그룹은 신동빈 회장이 친형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과의 경영권 분쟁에서 승리하면서 지난해 10월 새로운 지주사 체제를 출범시켰다.
만만치 않은 과제
주요 기업의 오너 3·4세 기업인과 CEO들은 젊고 창의적인 리더십을 앞세워 기존의 낡은 경영 시스템을 버리고 기업 구조와 체질을 바꾸는 실험에 들어갔다.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그룹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아직 재판(대법원)이 끝나지 않아 조용히 움직이고 있지만 변화의 폭은 파격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4월 불법파견 논란이 끊이지 않던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 임직원 8000여 명을 정규직으로 고용하기로 한 게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최근 3년간 △주요 계열사 합병 및 매각 △그룹 컨트롤타워(미래전략실) 해체 △주식 액면분할 △외국인·여성 사외이사 선임 등 지배구조와 경영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뜯어고치고 있다.
정의선 부회장은 그룹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미국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반대로 발목이 잡혀 잠정 중단했지만 보완책 마련에 동분서주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최근 “심기일전해 기업가치를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그룹 지배구조 개편 방안을 보완할 것”이라고 말했다.
LG그룹의 변화에도 관심이 쏠린다. 구광모 회장의 경영 보폭이 커질수록 그룹 내 변화와 세대교체 속도도 빨라질 전망이다.
지난해에는 창업주의 손자(오너 3세)가 부친의 바통을 이어받아 경영 전면에 나서는 일이 많았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장남이자 고 조중훈 한진 창업주의 손자인 조원태 사장(42)은 지난해 초 승진해 대한항공 경영을 맡고 있다. 효성그룹에서는 조석래 회장(83)이 2선으로 물러나면서 장남인 조현준 회장(50)이 그룹을 경영하고 있다.
그룹 회장이나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는 아니지만 보폭을 넓히며 수완을 발휘하는 3세도 늘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 대주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36)은 공식 직함만 3개다.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와 현대중공업 선박해양영업부문장, 그룹 지주사인 현대중공업지주 경영지원실장을 겸임하고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35)는 그룹 내 체질개선과 생산성 혁신 등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 기업인이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우선 세간의 곱지 않은 시선부터 극복해야 한다. 2세 기업인만 해도 창업주를 이어 기업을 키워냈다는 평가를 받지만 3·4세는 창업주 (증)손자라는 이유만으로 총수에 오른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적지 않다. 미·중 간 무역전쟁과 보호무역주의 등장, 고환율·고유가·고금리 등 신3고(高), 최저임금 인상·근로시간 단축·법인세 인상 등 달라진 경영환경에도 대처해야 한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글로벌 경영 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만큼 과거의 성공 방식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며 “결국 젊은 기업인 스스로 능력과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좌동욱/장창민 기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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