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보양식으로 '가벼운 한끼' 각광
냉면·막국수·김치말이 국수 등 인기
얼얼한 맛 마라샹궈·매콤새콤 ?얌꿍
중국·베트남 전통음식도 즐겨찾아
[ 김보라 기자 ]
1년 중 가장 더운 기간인 삼복(三伏)이 다가온다. 사람이 더위에 지쳐 있다고 해 ‘복(伏)’이라고 한다. 조선시대부터 무더위를 이기기 위해 보양식으로 삼계탕, 보신탕을 먹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요즘 삼복의 풍경은 조금 달라졌다. 1년 내내 영양 과잉인 현대인들은 여름이 다가오면 오히려 적게 먹고 몸을 가볍게 유지하기 위한 음식을 찾는다. 시원한 음식의 대명사인 냉면과 막국수는 스테디셀러다. 새콤하고 시원한 맛으로 유명한 김치말이 국수도 한국인에겐 빼놓을 수 없는 인기 아이템이다.
한국보다 더 더운 나라의 전통 음식을 찾는 이들도 있다. 베트남, 태국 등에서는 더위를 이기기 위해 더 맵고 뜨거운 음식을 먹어 몸의 에너지를 축적한다.
여름의 맛, 메밀
평양냉면이 미식가의 메뉴로 소문나면서 여름이 되면 ‘1일 1냉면’을 한다는 이들이 늘고 있다. 메밀은 몸을 차게 하고, 염증을 식혀주는 식재료로 알려져 있다. 우래옥, 을지면옥, 평양면옥, 필동면옥 등 전통의 강자들 외에도 신흥 맛집이 대거 등장했다.
서울 마포구의 ‘청춘구락부’는 주메뉴인 곱창보다 자가제면한 100% 순메밀 평양냉면으로 빠르게 입소문 난 집이다. 육향이 진한 물냉면과 김가루 및 들기름을 부어 먹는 순메밀면도 인기다. 연남동에도 20~30대가 열광하는 평양냉면집이 등장했다. ‘련남면옥’은 조개 육수를 사용한 독특한 국물 맛과 연근 튀김을 살짝 올린 예쁜 플레이팅으로 유명해졌다.
냉면이 식상하다면 순수한 메밀향에 빠져보는 것도 좋다. 메밀면을 먹을 때는 ‘후루룩후루룩’ 소리를 내서 먹는 게 좋은 매너다. 메밀은 맛이 아닌 향으로 먹는 음식이어서다. 후루룩 소리를 내면서 공기와 면이 부딪치며 더 깊은 향이 올라온다.
2010년부터 자가제면 메밀로 승부를 걸어온 ‘오비야’는 신사동에서 홍대로 자리를 옮기고도 여전히 긴 줄을 서는 소바 전문점이다. 쓰유(일본식 끓인 간장)에 찍어먹는 기본 소바 외에도 가지와 토마토를 올려 먹는 시원하고 새콤한 소바를 추천한다. 경복궁 인근 서촌에도 자가제면 일본식 소바를 하는 ‘노부’가 있다. 밀가루와 메밀을 2대 8로 매일 갈아 매장에서 직접 만든다. 메밀의 순수한 향을 느껴보기에 좋은 집이다. 서울 근교의 막국수집 중에는 경기 용인의 ‘고기리장원막국수’가 명성이 높다, 메밀 속껍질을 사용한 품질 좋은 면발에 들기름과 참깨 김을 얹어 먹는 들기름막국수, 비빔막국수와 물막국수가 주 메뉴다.
김치말이로 달래는 더위
습하고 더운 여름엔 시원한 김치국물만한 재료가 없다. 내수동 평안도만두집은 북한식 만두로 유명하지만, 여름엔 김치말이 국수를 내놓는다. 심심하고 시원한 맛으로 점심 시간 내내 사람들로 북적인다. 무교동 ‘이북손만두’에서 만두보다 김치말이를 주문하는 사람이 더 눈에 띈다. 한옥을 개조한 식당에 앉아 새빨간 김치국물에 얼음을 동동 띄워나오는 김치말이국수나 김치말이밥 한 그릇을 먹으며 어린 시절 방학을 맞아 할머니집에 다녀갔던 추억을 떠올리는 이들도 많다. 냉면 맛집인 우래옥에서도 수준급의 김치말이국수를 만날 수 있다. 슴슴한 육수에 김치를 2종으로 올리고, 밥 위에 면이 올라가 있다. 주문 전에 밥을 빼달라고 하면 밥을 빼고, 면을 빼달라고 하면 면을 뺄 수 있어 선택이 가능하다.
성북동 ‘하단’은 메밀 냉칼국수로 독보적인 세계를 구축한 맛집이다. ‘하단’은 평안도의 한 지역 이름이다. 중년의 부부가 운영하는데 부인의 고향 이름이기도 하다. 백김치 국물과 양지육수로 시원한 국물을 내고 통통한 메밀 칼국수면을 삶아 넣었다. 마니아들은 면을 건져 먹고 이 국물에 밥을 말아 먹는다.
세계의 보양식으로 ‘이열치열’
더위에 지쳐 기운이 떨어지는 여름에는 오히려 차가운 음식보다 뜨거운 음식을 먹기도 한다. 바깥 기온이 높을수록 땀이 날 정도의 열을 내는 음식을 먹으면 몸이 식는 효과를 낸다는 이유에서다. 베트남 쌀국수는 무더운 여름에도 남녀노소가 즐기는 메뉴가 됐다. 생면 쌀국수를 내세운 브랜드 ‘에머이’가 요즘 가장 인기다.
세계 3대 수프로 불리는 태국 ‘?얌꿍’이 대표 주자다. 태국어로 ‘?(tom)’은 끓인다는 의미이고, ‘얌(yam)’은 매콤새콤달콤한 맛, ‘꿍(kung)’은 새우라는 뜻이다. 레몬그라스와 토마토, 양파, 라임 등을 넣고 끓인 육수에 새우와 고수 등 각종 야채, 코코넛밀크 등을 넣는다. 김치찌개와 비슷한 맛으로 한국 사람들의 여름 입맛에도 잘 맞는다.
중국의 전통음식 훠궈와 마라샹궈도 잃어버린 입맛을 다시 잡기에 좋다. 훠궈는 매운 고추와 팔각, 각종 향신료를 넣어 끓인 육수를 백탕(하얗게 끓인 것), 홍탕(빨갛게 끓인 것)으로 만들고 각종 채소와 고기, 당면 등을 샤부샤부처럼 넣어 먹는다. 마라샹궈는 입을 마비시키는 얼얼한 맛의 사천 요리다. 통인동 마라샹궈, 연남동 삼국지, 자양동 복만루 등이 유명하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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