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수위 넘나드는 악플 공격
조현우 선수 아내·딸에도 공격
"인격모독 자제하자" 요청한
차범근 前 감독 '적폐'로 몰려
축구관계자 "만약 독일에 졌다면
여러명 인생 망가졌을 것"
평창올림픽 땐 '빙상적폐' 공격
악플에 해고노동자 극단 선택도
[ 임락근/이현진 기자 ] 한국 축구가 독일에 승리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지만 이번 러시아월드컵은 위험 수위에 다다른 ‘온라인 댓글 문화’를 여실히 입증했다. 예선 세 경기 중 앞선 두 경기에서 패했을 때 부진했던 일부 선수는 물론이고, 그 가족에게까지 무차별 악플 세례가 쏟아졌다.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 등에서도 드러난 ‘온라인 린치’ 문화가 독버섯처럼 확산하는 양상이다. 막판 10분여의 극적인 장면이 없었다면 앞날이 창창한 유망한 축구선수 여럿의 인생이 망가졌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선수·가족 싸잡아 ‘온라인 린치’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이 29일 인천공항을 통해 ‘영웅’처럼 귀국했다. 하지만 장현수 김민우 등 일부 선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폐쇄한 상태다. 패한 경기에서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다며 네티즌이 몰려가 모욕적인 ‘댓글 테러’를 가했기 때문이다. 당시 청와대 게시판에는 ‘태형에 처해야 한다’ ‘추방해야 한다’ 등 극단적인 청원까지 잇따랐다.온라인상의 공격이 놀이처럼 무차별적으로 퍼지는 점도 이번 월드컵에서 목격된 새로운 모습이다. 일부 네티즌은 큰 활약을 펼친 골키퍼 조현우 선수의 아내 이희영 씨의 SNS에 몰려가 외모를 지적하고 딸에 대한 악플을 달았다. 결국 이씨는 SNS 계정을 아예 삭제했다. “아기가 나중에라도 글을 알게 되면 상처받을 것 같아, 수년간 일상을 담은 사진들을 지우게 됐다”는 게 이씨의 토로다.
‘레전드’ 차범근 씨도 악플 세례를 피해가지 못했다. 네티즌은 선수와 가족들을 향한 인격모독 자제를 요청하는 차씨에게 ‘팬의 권리에 재갈을 물리느냐’ ‘욕 먹는 것도 선수가 해야 할 일의 일부’라고 욕했다. 급기야 그는 ‘적폐’로도 몰렸다.
외국인들도 온라인 린치의 대상이 됐다. 독일전이 끝난 뒤 국내에서 활동하는 독일 출신 방송인들의 SNS에는 패배를 조롱하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멕시코 출신 방송인 크리스티안 부르고스 씨도 별 이유 없이 악플을 감수해야 했다. 축구계 관계자는 “마지막 경기에서 독일에 졌다면 선수 여러 명의 인생이 망가졌을 것”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익명 뒤에 숨은 집단 폭력성
온라인 린치는 당사자에게 심각한 정신적, 심리적 트라우마를 남기지만 너무 쉽게 반복되는 양상이다. 몇 달 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김보름 선수가 타깃이 됐다. 단체경기에서 동료 노선영 선수와 거리가 벌어지자 왕따시켰다며 ‘빙상계 적폐’로 몰렸다.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 최근 조사에서 왕따 의도는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지만 김씨는 정신과 치료까지 받아야 했다.
온라인 폭력은 극단적인 결과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다. 며칠 전 자살을 택한 쌍용차 해고 노동자 김모씨 사례에서도 잘 드러난다. 김씨가 최근 한 언론과 한 인터뷰 기사에 안 좋은 댓글이 줄줄이 달린 게 영향을 준 것 같다는 게 쌍용차 해고자 심리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전문가의 전언이다. 이 같은 온라인 폭력은 우리 사회 내부에 강화되는 집단주의적 경향의 방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익명에 기댄 온라인상의 집단적인 공격이 위험 수위로 치닫고 있다”고 우려했다.
임락근/이현진 기자 rkl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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