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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對北사업, 열정보다는 냉정한 접근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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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사업 단기 성과만 좇지 말고
국제 수준의 투자안전장치 구축
장기적인 성장동력으로 활용해야

이정선 < 건설부동산부 차장 >



[ 이정선 기자 ] 10년 전 국내 중소기업이 운영하는 개성공단의 한 신발공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난생처음 목격한 북한의 사정은 그야말로 짠했다. 점심시간 식당에 모인 북한 노동자들의 낡은 양은도시락엔 양념도 제대로 안 한 푸성귀 반찬이 전부였다. 간식으로 하나씩 나눠준 초코파이를 식구들 생각에 겨드랑이에 감춰 몰래 반출하다 북측 관리들에게 걸리는 일도 많다고 했다.

북한 노동자들의 궁핍한 처지는 역설적으로 개성공단에 진출한 중소기업에는 값싼 노동력 공급원이자 수출 경쟁력이었다. 그러나 개성공단 폐쇄로 남북 경협 모델은 물거품이 됐다. 남북한 간 정치적 불확실성의 최대 희생양은 개성공단에 진출한 기업들이었다.

남북 관계는 다시 급반전하고 있다. ‘북한 특수’에 대비한 기업들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특히 건설업종의 기대는 남다르다. 철도, 도로, 전력, 주택, 항만, 에너지 설비 등 북쪽의 열악한 사회기반시설(SOC) 투자가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어서다.

독일도 그랬다. 1989년 11월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통일 독일이 직면한 과제는 옛 동독지역의 낡은 인프라였다. 독일 연방정부는 1991년 4월 390억유로(약 50조원)를 투입해 9개 철도, 7개 고속도로 등을 건설하는 ‘독일 통일 교통 프로젝트(VDE)’를 추진했다. 대대적인 주택 개선 프로그램도 단행했다. 독일 통일 이후 10여 년간 건설시장이 호황을 누린 배경이다. 동독 지역의 교통, 주택, 에너지, 산업단지 등의 기반시설이 어느 정도 갖춰진 후에야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타(他)산업이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우리도 북한에서 독일과 같은 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국내 기업이 철책선을 넘기에는 너무 많은 지뢰가 도처에 깔려 있다.

우선 비핵화와 연계된 미국과 유엔의 대북(對北)제재가 해제되지 않는 한 국내 기업이 북한에 진출할 방법은 아무것도 없다. 당장 ‘세컨더리 보이콧’에 걸려 해외시장에선 달러 결제부터 막힌다. 곧 시작될 것처럼 여겨지는 철도 분야도 마찬가지다. 지난 26일 남북한 당국자가 만나 남북 철도 연결과 북한 철도 현대화 등에 합의했지만 냉정하게 볼 때 아직 선언 이상의 의미는 없다.

재원도 걸림돌이다. 발주처에 해당하는 북한 수중에 돈이 없다는 것이 근본적인 한계다. 엄청난 규모의 남북협력기금이나 정부 재정, 투자펀드, 해외 차관 등이 받쳐주지 않으면 대북 사업은 굴러갈 수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업들이 개성공단처럼 다시는 ‘총알받이’로 전락하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다. 이른바 ‘정상국가’로 탈바꿈하겠다는 북한과의 협정은 이전 수준과는 달라야 한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면 남북 경협이 하루아침에 정상궤도에 오르기 어렵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럼에도 북한은 놓칠 수 없는 시장이다. 국내외에서 먹거리가 고갈되고 있는 건설업계는 북한을 새로운 성장동력 차원을 넘어 생존의 문제로까지 인식하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가 진전되고 미·북 간 국교 수립으로 이어지면 결국 국내 기업들은 북한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북한과 국제적으로 용인되는 수준의 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해 국내 기업의 안정적인 경영활동과 수익을 보장해야 한다. 남북 경협의 단기 성과에 급급해 대북 사업을 공공공사 수준의 헐값으로 국내 기업들에 ‘강제 할당’하려는 유혹도 경계해야 한다. 열정보다는 냉정한 접근이 필요한 때다.

leewa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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