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에 있는 현금 1만원과 통장에 들어 있는 1만원은 똑같은 1만원일까. 그럼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 5만원과 길을 걷다 주운 5만원은? 행동경제학이 대두하기 이전에는 모두 같은 1만원이고 5만원이라고 생각했다. 돈을 어떻게 벌었든, 어디에 쓰든, 어떤 방식으로 보관하든 상관없이 동일한 금액은 완벽하게 대체 가능한 것으로 여겼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지갑에 있는 1만원과 통장 속 1만원을 전혀 다르게 대한다. 일을 해서 번 돈과 우연히 얻게 된 돈에도 전혀 다른 가치를 부여한다. 현금 1만원과 1만원권 상품권 역시 금전적인 가치는 동일하지만 이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다르다.
이를 확인해주는 사례가 있다. 러시아월드컵 결승전 입장권을 10만원을 주고 구매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경기장 입구에서 이 입장권을 잃어버렸다. 이때 당신은 경기를 보기 위해 다시 10만원을 주고 입장권을 구입할까.
이 문제에 대한 답변은 잃어버린 것이 10만원짜리 입장권인지, 입장권을 사기 위한 현금 10만원인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구입한 입장권을 잃어버렸을 경우, 새 입장권을 구입하지 않겠다고 답변하는 경향이 짙다. 하지만 입장권을 구입할 현금 10만원을 잃어버렸을 때는 10만원을 더 마련해 입장권을 구입하겠다고 답변한 사람이 상대적으로 더 많다.
이렇게 선택이 달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 사례는 문화활동비로 총 20만원을 지급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즉, 앞서 구매한 입장권 가격 10만원과 새로 입장권을 구매하기 위해 지급하는 10만원 모두 경기 관람이라는 문화활동비로 생각한다. 결국 축구 경기를 한 번 보는 데 20만원을 지급하는 것은 과하다고 생각해 입장권을 재구매하지 않는 것이다.
현금 10만원을 잃어버렸을 때는 심리적으로 전혀 다른 느낌을 갖게 된다. 현금 10만원은 현금을 잃어버린 것이다. 다시 말해 문화활동비는 아직 지출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축구 관람을 위해 입장권을 구매하는 데 필요한 금액은 여전히 10만원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심적(心的) 회계’로 설명한다. 회사가 회계장부를 작성하는 것처럼 개인도 금전의 출납과 관련해 마음속에 별도의 계정을 만들어 관리한다는 것이다. 즉, 사람들은 돈의 출처, 형태, 크기, 사용처 등에 따른 별도의 심적 공간을 두고 있기 때문에 들어가는 금액이 같더라도 이를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방식은 물론 최종 지출 행태까지 달라진다는 설명이다.
박정호 < KDI 전문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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