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정부 개입 적절치 않아"
"블록체인이 인터넷과 같은 혁명을 불러올 것이라는 관측이 많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이 완전히 다른 삶의 형태를 가져왔다면 블록체인은 기존에 불편했던 점을 개선하는 형태로 다가올 것입니다. 인터넷을 손 안으로 가져온 스마트폰처럼 말입니다."
전중훤 블록체인 이코노믹 포럼 아태지역 회장(사진)은 이처럼 블록체인에 대한 지나친 환상에 우려의 목소리를 보냈다. 블록체인 기술이 많은 도움을 주겠지만 모든 것이 가능한 만능은 아니라는 얘기다.
전 회장은 한경닷컴과의 인터뷰에서 "관련 산업 규모가 2027년 세계적으로 GDP(국내총생산)의 10%를 차지할 것이라는 세계경제포럼의 예측이 있을 정도로 블록체인이 4차 산업혁명의 중심에 있는 것은 맞다"면서도 "블록체인은 판 자체를 바꾼다기보다 해외송금, 증명서, 물류 추적 등 우리 삶의 불편함을 개선하는 형태로 다가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상의 대부분 분야 기존 시스템이 유지되는 상황에서 불편을 느끼는 부분 위주로 블록체인이 적용될 것이라고 했다. 삶을 개선할 하나의 '도구'인 만큼 모든 산업이 블록체인화될 필요도, 투기 대상이 될 이유도 없다는 얘기다.
블록체인 기술은 급성장하고 있지만 개발인력이 부족한 것도 현실적 문제다. 블록체인은 빠른 속도와 비즈니스 적용에 초점을 맞춘 '3세대'로 진입하는 중이다. 이더리움, 이오스 등 대표 블록체인 간에 주도권 경쟁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프라이빗과 퍼블릭, 컨소시엄 블록체인이 공존하는 형태로의 변화도 감지된다. 누구나 접속하고 열람할 수 있는 퍼블릭 블록체인은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평가받지만, 정작 기업들에게는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반면 외부 접근을 차단하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기존 데이터베이스 방식보다 효율성이 떨어지는 한계가 있었다. 때문에 퍼블릭과 프라이빗의 중간 단계인 컨소시엄 블록체인이 기업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R3, 하이퍼렛저 등이 대표적이다.
늘어난 개발자 수요에 비해 공급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전 회장은 "실리콘밸리의 일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중간 연봉은 10만달러 수준이지만 블록체인 개발자는 15만8000달러에 달한다"고 전했다. 구인난이다. 그는 "많은 기업들이 개발자를 못 구해 어려움을 겪는 형편"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그는 앞으로 이런 상황이 빠르게 개선될 것으로 내다봤다. "블록체인 개발자 양성을 위한 교육 코스가 늘고 있다. 꼭 대학이 아니더라도 온라인 교육 코스, 오픈 포럼 등을 통한 양성도 이뤄진다"는 게 전 회장의 설명이다. 업계에서는 기존 정보기술(IT) 개발자를 블록체인 개발자로 재교육하는 데 6개월에서 1년 정도 걸리는 것으로 본다. 비교적 단기간에 부족 인력이 충원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2010년 20억명이던 세계 인터넷 이용인구가 올해 안에 40억명을 돌파할 예정이다. 블록체인 파급에 적합한 인프라도 갖춰진 셈"이라고 했다.
특히 한국이 블록체인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 회장은 "한국에는 우수 IT 기술자가 많고 인프라도 잘 갖춰져 있다. 투자 시장으로도 큰 영향력을 지녔다"며 "재교육과 기술 개발을 통해 세계 시장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정부가 지나치게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그는 "흐름을 타면 한국에서도 블록체인이 제도권에 안착할 수 있다"고 전제한 뒤 "정부의 관여보다는 '자유로운 경쟁이 이뤄지는 운동장을 만드는 식'이 돼야 할 것이다. 블록체인은 활발한 기술 개발이 이뤄지는 만큼 샌드박스 형식 규제(신산업 육성을 위해 일정기간 규제를 전면 면제해주는 제도)가 필요한 분야"라고 강조했다.
한편 전중훤 회장은 휴렛팩커드(HP) 아시아태평양지역 조세재정총괄본부장을 역임했다. HP가 PC·프린터 사업 중심의 HP Inc와 서버·스토리지 사업 중심 HPE로 분할되고 HPE 엔터프라이즈 서비스 사업부가 DXC 테크놀로지로 변경된 이후 한국 DXC 테크놀로지 엔터프라이즈서비스코리아 대표이사를 맡았다. 또 지난해 블록체인 이코노믹 포럼 아태지역 회장을 맡아 경제·산업·정치·학술 등 각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사회 각 분야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블록체인 이코노믹 포럼의 첫 행사는 지난해 10월 미국 뉴욕에서 열렸다. 올 2월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두 번째 포럼에는 비센테 폭스 전 멕시코 대통령 등 1500여명이 참석했다. 세 번째 포럼은 오는 16일(현지시간)부터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다. 인공지능 소피아와 DJF 벤처캐피털 설립자 티모시 드래퍼, 링크트인 설립자 에릭 라이 등 190여명이 연사로 나설 예정이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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