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민 < 하늘땅의원 원장 >
우리나라 질병 이름 중에 미국으로 수출된 것이 있다. 바로 ‘화병(火病)’이다. 원래 화병은 우리나라에서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한 분노를 발산하지 못하고 참는 일이 반복돼 발생하는 일종의 스트레스성 장애’를 일컫는 말이었다. 그런데 1996년 미국 정신과협회에서 이런 화병을 문화 관련 증후군의 하나로 등록했다. 표기도 로마자로 ‘Hwabyeong’이라고 지정, 명실상부한 고유명사가 됐다.
서양의학에서는 한의학에서 이용되는 화(火)나 열(熱)의 개념이 없기 때문에 임상적으로 치료가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서양의학에서는 물질적인 변화나 구조적인 문제가 생겼을 때만 치료 대상으로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화병과 같이 기능적인 변화에는 마땅한 치료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다.
화병은 다른 말로 울화(鬱火)병이라고 얘기한다. 즉 ‘쌓이고 쌓여서 누적된 화병’이란 뜻인데 화병이 심하면 혈관이 팽창해 출혈이 생기거나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 옛날 촉나라의 제갈공명은 자신에게 속아서 빼앗긴 땅을 되찾으러 온 오나라 주유를 약 올렸는데 이에 분노한 주유가 화를 참지 못하고 피를 토하면서 죽었다는 얘기가 있다. 실제 임상에서도 이런 경우를 볼 수 있다. 필자의 환자 중에 부부싸움만 하면 피를 토한다는 이가 있고, 분노를 참지 못해 화를 내다가 뇌혈관이 터져 중풍이 왔다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화병은 화(火)와 열(熱)에 의한 증상이기 때문에 얼굴이 달아오르는 안면홍조, 두통, 어지럼증 등의 증상이 생긴다. 입이 마르고 갈증이 나며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상도 나타난다. 입술과 입안에 구내염이 생기기도 하고 땀이 비 오듯 흐르거나 얼굴에 피부 트러블이 생기기도 한다. 가슴이 답답하거나 명치 끝에 딱딱한 덩어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렇게 가슴에 증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심화(心火), 즉 마음에 화가 생긴 때문이다.
심하지 않은 경우에는 침으로 가볍게 순환시켜 주기도 하지만, 근육이 경직돼 척추 변위까지 일어났으면 추나와 같은 척추교정을 해줘야 한다. 가벼운 경우에는 화를 가라앉히는 처방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시간이 오래 경과돼 진액이 부족해졌으면 음혈(陰血)과 같은 진액을 보충해야 한다. 그러니 화병의 조짐이 보이면 바로 전문가를 찾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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