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선수들에게 정년을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저(低)성과자 보호’ 취지가 강한 정년제도의 본질적 특성에다 강요된 획일성으로 인해 팬들은 달아나버릴 것이다. 잘 던지고 잘 치는 선수는 40대에도 팬을 몰고 다니고, 노력을 않거나 역량이 안 되면 20대에도 은퇴하는 게 ‘프로’의 세계다.
그래서 프로야구도, 프로축구도 ‘실력이 정년’이다. 프로 스포츠가 계속 기량을 키워오고 ‘고임금 산업’으로 발전해가는 데는 정년이 없는 것도 단단히 한몫한다. 스포츠만이 아니다. 예술가, 연예인, 학자, 성직자 등 ‘전문가’일수록 정해진 정년이 없거나 있어도 큰 의미가 없다. 역량과 성과가 중요할 뿐, 활동에 나이 제한이 없다면 그 분야는 곧 전문가의 세계다.
미켈란젤로가 대작 ‘최후의 심판’을 완성한 때가 66세, 칸트가 《판단력비판》으로 독일 근대철학의 기초를 닦았다는 평가를 받은 것도 66세였다. 그 시대의 평균수명을 감안할 때 대단한 노익장(老益壯)이다. 백수(白壽·99세)의 철학자 김형석 교수는 오늘도 현역처럼 활동 중이다. 물론 정년 몇 년 차이로 웃고 우는 보통사람으로서는 쉽지 않은 경지다. 그래도 우리 주변에는 평생의 생업을 천직 삼아 70대, 80대까지 일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법원이 ‘가동(稼動)연한’(일해서 소득을 내는 한계 연령)을 65세로 보는 항소심 판결을 내놔 화제다. 요컨대 “육체노동 정년은 65세”라는 취지다. 1989년 60세로 올렸던 가동연한에 대한 대법원 판례가 29년 만에 바뀔지 관심사다. 이번에 항소심 재판부는 22쪽 분량 판결문에서 12쪽에 걸쳐 육체노동자의 가동연한을 65세로 늘려야 하는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 주목을 끌었다.
정년연장에 대해서는 양론이 있을 수 있다. “고령에도 일할 수 있다면 축복”이라는 게 다수설일 듯하지만, “늙어서도 일해야만 하나”라는 부정적 시각도 있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정권에 따라 정년이 늘었다 줄었다 했다. 중요한 것은 획일적인 정년제도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근로의 자유’ ‘계약의 자유’는 사회적 필요와 개인의 판단에 맡기는 게 바람직하다. ‘연령에 따른 고용차별 금지’ 차원에서 정년이 없는 미국이 모범 사례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육체보다 지식 노동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의료·위생·영양이 나아지면서 지식과 경험이 많고 일할 의지도 있는 60대, 70대가 많다. 가뜩이나 생산가능인구(15~64세)의 감소를 걱정하는 저출산 시대다. 고령 인력을 잘 활용하면 ‘인구절벽’을 극복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65세인 노인기준까지 올리면 정부 지출에서도 숨통이 크게 트일 것이다. 유능한 고령자의 사회적 활용에 큰 걸림돌이 정년제도다. 정년과 인구 문제도 해법은 결국 ‘고용 유연성’ 확보로 귀결된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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