닻 오른 LG 4세 경영
가족장 치르자마자 여의도 출근
계열사 CFO들과 의견 교환하며
재무전략·자금흐름부터 챙길 듯
(주)LG 주총前 직책 정해질 전망
[ 노경목 기자 ] “글로벌 LG를 이룩하신 구본무 회장님이 지난 20일 운명하셨습니다. 모두 함께 묵념합시다.”
23일 오전 9시.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충북 청주시 오창 LG화학 배터리공장, 경남 창원 LG전자 가전공장에 이르기까지 국내 13만여 명의 LG 직원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가족장으로 치러진 구본무 LG그룹 회장 빈소를 찾아 추모할 기회가 없었던 아쉬움을 달랬다. 1분 남짓에 불과했던 사내 추모 방송에서 구 회장 영정 사진만 화면을 잠깐 채웠을 뿐 고인의 업적을 기리는 별도 동영상 상영 등은 없었다. 3일장을 마치고 명실상부한 LG그룹 수장이 된 구광모 LG전자 상무(사진)의 업무 복귀 첫날 풍경이다.
◆“당분간 경영 안정에 집중”
구 회장의 외아들인 구 상무는 이날 LG전자가 있는 LG트윈타워 서관으로 출근했다. 자신이 사업부장을 맡고 있는 ID(정보디스플레이)사업부 후임자가 정해지는 대로 그룹 지주사인 (주)LG가 있는 동관으로 사무실을 옮길 예정이다.
막 닻을 올린 ‘구광모호(號)’는 당분간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주요 계열사들이 이미 중장기적인 사업 재편 계획을 내놓고 투자를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그룹 오너가 바뀌었다고 새로운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LG전자는 지난달 오스트리아의 차량 헤드라이트 제조업체 ZKW를 인수하며 1조원이 넘는 투자금을 집행했다. 다른 전장(電裝)사업과 태양광사업 등에도 적지 않은 투자를 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당분간 신규 설비 투자에 나서기는 힘들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LG디스플레이는 LCD(액정표시장치)에서 OLED(유기발광다이오드)로 사업을 전환하는 과정에서 2020년까지 국내에만 15조원을 투자한다. LG유플러스는 5세대(5G) 이동통신 대응, LG이노텍은 3차원 카메라 모듈 공급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계열사들의 올해 사업도 양호해 경영상 큰 변화를 모색할 시점이 아니다.
◆구 상무, 사장 승진 여부 주목
구 상무는 거창한 투자를 결정하기보다는 기존 투자 계획이 차질 없이 이뤄지도록 그룹 내 굵직한 자금 흐름을 관리하는 데 주력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구 상무를 보좌하는 하현회 (주)LG 부회장 등 6인의 부회장단보다 정도현 LG전자 사장 등 주력 계열사 최고재무책임자(CFO)들의 의견을 듣는 시간이 많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다음달 29일로 예정된 (주)LG 주주총회에서 구 회장을 대신해 사내이사로 선임될 구 상무 직책은 그 전에 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직급은 회장이나 부회장보다 사장급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재계 관계자는 “전문경영인의 전문성을 최대한 인정해온 오너 일가의 전통상 구 상무가 바로 부회장 이상 직급을 맡을 지 여부도 관심이다”며 “46.68%로 (주)LG에 절대적인 지분을 가진 오너 일가가 구 상무의 경영 승계에 뜻을 모은 만큼 직급의 고하가 중요하지도 않다”고 설명했다.
중장기적으로는 경영진 교체를 포함한 사업 및 인적 쇄신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구 상무 나이는 만 40세로,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과 차이가 최대 26년에 이른다. 4세 경영 체제가 안착되는 대로 50대 사장을 중심으로 그룹 경영 시스템을 바꿀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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