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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야기(15)] 김동리 화랑의 《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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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시대에 과거에 살다

스페인의 문호 세르반테스의 대작 《돈키호테》가 17세기 초의 작품이니 중세의 기사계급이 몰락하고도 한참 뒤다. 그러나 이 소설의 주인공 키호테 씨는 기사도 소설에 푹 빠져서 사냥도 그만두고 일상도 팽개친다. 책을 사기 위해 경작지까지 팔아치웠건만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몸소 악당을 제거하고 세상을 구하고자 모험을 떠난다. 기이한 동기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살아버린 인물이다.

변화한 시대를 받아들이지 않고 과거를 사는 돈키호테 같은 인물이 우리에게도 있다. 김동리의 ‘화랑의 후예’의 주인공 황진사가 바로 그이다. 작품 속 서술자인 ‘나’는 숙부의 손에 이끌려 파고다 공원 뒤 점쟁이에게 가서 관상을 보게 되고 거기서 황진사를 알게 된다. 그는 황후암의 육대 종손인 황일재라는 사람으로 육십이 다 된 나이에 거무스름한 두루마기를 입고 얼굴이 누르퉁퉁하며 벗겨진 이마와 불그스름한 핏물 같은 것이 도는 눈을 가졌다.

숙부가 집을 비운 어느 가을날 황진사가 찾아온다. 그는 ‘쇠똥 위에 개똥 눈 것’을 명약이라며 내게 맡기려 하다가 마침 식사 시간이라 밥을 얻어먹고 간다. 또 친구라는 사람과 함께 먼지투성이의 책상을 하나 가져와서 사라고 한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이십 전을 줘서 보낸다. 숙부를 통해 그가 문벌이 놀라운 양반 집안이어서 자부심이 크고 조상 중에 정승 판서가 많았음을 알게 된다.


황진사는 문벌 양반 출신

숙부의 부재중에 다시 ‘나’를 찾아온 그는 화로를 끼고 몸을 녹이며 《시전》을 외다가 《주역》을 읽는다. 그리고 툭하면 찾아와서 음식 대접을 받고 간다. 그러던 어느 날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그는 자신의 조상이 신라의 화랑임을 알게 되었다며 자랑한다. 두 달 후 길에서 다시 보게 된 그는 두꺼비 기름을 만병통치약이라고 속여 파는 약장수 옆에 앉아 약효를 본 사람 행세를 하고 있었다. 순사가 오고 약장수와 함께 잡혀가는 그를 보며 ‘나’는 연민을 느낀다.

이 작품은 1935년 조선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박태원은 ‘문예시감(신춘작품을 중심으로 한 작품 리뷰)’에서 이 신인 작가의 데뷔작을 완성도 면에서 아주 높이 평가했다. 황진사가 서울 종로통에서 ‘활약’하던 때는 1930년대. 황진사의 나이를 감안해 보면 그가 소년 시절에는 문벌을 내세우는 것이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뼈대 있는 가문의 후손답게 자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몰락한 양반의 후예답게 그는 가난했고 구한말과 식민 시대를 보내며 어떤 성취도 영광도 얻지 못하고 추레하게 늙었다. 진사라는 호칭도 관상소에서 누군가 그에게 《서전》과 《춘추》를 외게 한 후 급제하였다며 진사라 불러서 ‘얻어 걸친’ 것에 불과하다.

같은 초로의 사내라고는 하나 귀족 돈키호테에게는 충직한 하인이 있었고 모험에 지친 그를 속여서 집으로 돌아오게 한 벗이 있었고 사후에 친구들에게 물려줄 재산도 있었다. 그는 몽상가였지만 그의 과대망상은 천진한 유쾌함으로 400년이 지난 지금도 사랑받는다. 우스꽝스럽고 일방적이나마 로맨스까지 품었다. 기사 돈키호테가 모든 영광을 돌릴 귀부인으로서 사랑한 둘시네아 공주님을 기억하시는지? 그러나 황진사에게는 단지 비루한 허세가 있을 뿐이다. 그의 고루한 가문 의식은 인생 마지막일 로맨스의 기회조차 날려 버린다. 숙모가 중매를 나서 나이 삼십이 못 된 과부를 소개하려 하자 황후암의 육대 종손에게 어찌 남의 집에 출가했던 여자를 소개하려 하냐며 펄쩍 뛴 것이다.

무기력한 1930년대 지식인 모습

이 중늙은이는 왜 이렇게 가문에 집착하는 것일까? 답은 너무 쉽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의 처절한 빈곤과 결핍은 시대에서 기인한다. 그 시대의 풍경은 숙부가 ‘나’를 이끈 관상소에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관상소 방 안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다. 술이 묻고 때가 전 옷을 입고, 눈에 핏발을 세우고, 볼에 살이 빠져 광대뼈들이 불거진 불우한 정객, 불평 지사들이며 문학가, 철학가, 실업가, 저널리스트, 은행원, 회사원들이 무수히 출입하고, 금광쟁이, 기미꾼들이 방구석에 뒹굴고 있었다.’ 망한 나라의 망한 백성들, 지식인조차도 혹시나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점쟁이의 입을 쳐다보던, 아편굴 같은 관상소는 활로 없던 시대의 무기력 그 자체다.

그 무기력에 질식하지 않기 위해, 맨몸으로 쓰러지지 않기 위해 황진사는 가문이라는 갑옷, 진사라는 갑옷을 걸치고 다녔을 것이다. 그걸로도 부족하여 천 년이 넘는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화랑이라는 갑옷까지 구해 입었을 게다. 그러나 이 갑옷은 판지로 만든 돈키호테의 그것보다도 허술하다. 기사계급의 영광을 오늘에 재현하려 좌충우돌하는 돈키호테에게는 자신의 꿈에 여생을 바친 불굴의 인간이라는 아우라가 있다. 그러나 황진사에게는 오직 가난하고 오직 꾀죄죄한 시대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을 뿐이다. 바람 한 자락 막아주지 못하고 사스락대는 종이옷을 갑옷인 양 걸치고 한 끼 밥을 해결하려 동분서주 종로통을 횡보하는 황진사. 아아, 눈물겹도록 남루한 우리의 돈키호테여.

손은주 < 서울사대부고 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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