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양서류를 멸종 위기로 몰고 가고 있는 공포의 곰팡이가 한국에서 처음 유래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한국에 있던 곰팡이에 감염된 양서류가 국제 교역을 통해 세계로 퍼져 나가면서 멸종을 부추기고 있다는 분석이다.
세계적인 양서류 생태 전문가 브루스 월드먼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를 비롯해 영국과 스페인, 스위스, 스웨덴 등 38개 기관이 참여한 국제 공동 연구진은 세계 곳곳에서 양서류들을 위협하는 병원성 항아리곰팡이가 한국에서 시작해 퍼져나갔다는 사실을 곰팡이 게놈(유전체) 분석으로 알아냈다고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10일(현지시간) 발표했다.
1998년 학계에 처음 보고된 항아리곰팡이는 현재 양서류들에 치명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이 곰팡이는 양서류 피부를 통해 몸속에 침투해 호흡을 방해하고 심장마비를 일으켜 끝내 죽음에 이르게 하고 있다.
월드만 교수가 이끄는 서울대 연구진은 지난 2013년 한국 개구리들이 항아리곰팡이에 면역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국내에서 발견되는 이들 곰팡이의 계통을 분리하고 중국과 일본에서 발견된 곰팡이의 게놈 일부와 비교했다. 당시 분석 결과 개구리를 감염시키는 중국과 일본의 항아리곰팡이 계통보다 국내에서 발견된 곰팡이의 계통이 유전적으로 다양하고 더 오래된 조상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국제 공동연구진은 이번 연구에서 사용된 새로운 유전자 분석 방법인 ‘전장유전체염기서열분석법’을 활용해 월드먼 교수 연구진의 추론을 뒷받침했다. 연구진은 한국은 물론, 아프리카, 미주, 유럽의 개구리에서 추출된 항아리곰팡이 샘플 234개를 대상으로 전체 게놈을 분석해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병원균 계통이 한국의 무당개구리를 감염시키는 항아리곰팡이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진의 분석 결과 4개의 주요 유전적 계통이 나타났고 이 중 3개 계통이 세계적으로 퍼져있고 1개 계통은 한국에서만 발견됐다. 연구진은 이처럼 한국에서 발견된 곰팡이 계통의 유전적 형질이 다른 지역보다 훨씬 다양하다며 항아리곰팡이가 한국에서 등장한 뒤 세계로 확산하면서 해외의 다른 계통과 유전 형질을 교환하면서 전염병으로 탈바꿈했다고 분석했다.
국제 공동연구진은 이런 결과를 바탕으로 항아리 곰팡이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질환을 일으키는 능력을 가진 뒤 변형을 일으키며 1950년대 해외 교역이나 군수 물자 수송을 통해 확산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본국으로 돌아가는 물자 수송선을 통해 해외로 나갔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전까지는 양서류 멸종을 가속화하는 곰팡이가 아프리카에서 유래했다는 ‘아웃오브 아프리카설’이 유력한 가설로 활용됐다. 1930년대 아프리카 발톱개구리가 세계로 수출되면서 병원균이 확산됐다는 내용이다. 이번 연구는 양서류 멸종에 관한 기존 가설을 뒤집는 연구여서 주목을 받고 있다.
항아리곰팡이는 북중미와 유럽, 호주의 양서류 개체군을 크게 감소시키거나 집단 폐사로 이끌고 있다. 감염 지역 내 양서류 종의 40%에 달하는 개체를 멸종에 이르게 하고 있다. 세계동물보건기구(WOAH)는 항아리곰팡이를 국제적으로 신고 의무가 있는 질병으로 지정하고 있다.
이 곰팡이는 유독 아시아 지역에선 기를 쓰지 못하고 있다. 연구진은 한국 개구리들이 오랜 시간 이들 항아리곰팡이에 감염되지 않도록 저항성을 갖도록 진화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 1911년 북한 원산에서 채집된 개구리의 피부 조직에서 발견된 항아리곰팡이가 이를 뒷받침할 중요한 근거라는 것이다. 서울대 연구진은 지난 2015년 연구에서 피해를 입고 있는 해외의 다른 양서류 종들도 병원성 항아리곰팡이에 대한 면역저항성을 발달시킬 수 있다는 점을 알아냈다. 항아리곰팡이에 대해 면역 저항성을 가지는 해외 종들은 모두 같은 형태의 면역세포수용체를 가지는데, 이는 한국의 양서류들에서 흔히 발견되는 형태다. 면역세포수용체는 항아리곰팡이를 잘 인식해서 항아리곰팡이가 병을 유발하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다만 저항성을 갖추지 못한 해외 다른 지역 개구리들에겐 한국 고유의 항아리곰팡이는 여전히 치명적인 것으로 분석됐다.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이뤄졌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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