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방방곡곡 노포 찾아 장수 비결 기록한 박찬일 셰프
4년간 하동관·신일반점·바다집 등
40여곳 노포 창업주 만나 취재
"맛은 기본, 운도 따라야 하지만
음식 대하는 진심이 가장 중요하죠"
[ 홍윤정 기자 ] 노포(老鋪)는 오래된 가게라는 뜻이다. 생명이 없는 가게에 노(老)자를 붙인 건 사람과 함께 역사를 함께하며 늙어간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노포가 오랜 세월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생존한 비결은 무엇일까.
‘글 쓰는 요리사’로 유명한 박찬일 셰프(사진)는 최근 펴낸 《노포의 장사법》에서 성공한 점포의 공통점을 기세(幾歲), 일품(一品), 지속(持續)의 세 가지 키워드로 제시했다.
서울 광화문의 돼지국밥 전문점인 광화문국밥에서 만난 박 셰프는 “오래된 식당에만 있는 특별한 비결을 기록하고 싶어 전국 방방곡곡의 노포를 찾아다녔다”고 말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3년간 유학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홍대 로칸다몽로와 광화문 몽로 등 퓨전 이탈리안 식당을 줄줄이 성공시킨 스타 셰프다. 박 셰프는 2014년부터 3년간 서울 하동관과 을지면옥, 인천 신일반점, 강릉 토박이할머니순두부, 부산 바다집 등 ‘전설의 밥집’ 창업주와 대를 잇고 있는 이들을 만나 취재한 뒤 책을 썼다. 책에 소개된 26곳의 평균 업력은 54년. 올해 53세인 그보다 나이가 많은 셈이다. 박 세프가 첫 번째로 꼽은 노포 창업주의 공통점은 ‘기세’다.
“하동관은 더 팔면 돈을 더 벌 수 있는데도 하루 500그릇, 정해진 양만 판매해요. 팔판정육점은 단골집에 손해를 보고도 그냥 팝니다. 이처럼 눈앞의 이익에 흔들리지 않는 배포와 뚝심이 기세라고 봅니다.”
그는 일에 대한 집념을 ‘일품’으로 표현했다. “을지면옥은 새벽 5시부터 주인장이 직접 나와 육수를 끓입니다. 주방일을 직원에게 맡길 수 없다는 거죠. 최고만을 대접하겠다는 자세가 일품입니다. 오랜 세월 대를 이어가며 처음 그 맛을 유지하는 위대함은 ‘지속’이라고 붙였습니다.”
취재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한국에는 오래된 식당이 드물었다. 일제 식민지와 전쟁으로 업을 이어가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고된 식당 일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으려는 분위기도 한몫했다. 노포가 유지된 건 자식들의 희생과 노력 덕분이었다. 팔판정육점은 대기업에서 80억원에 팔라는 제안을 거절하고 미국 경영전문대학원(MBA) 출신인 아들에게 가게를 물려줬다. 을지오비베어는 구순이 된 아버지를 이어 딸이 ‘디스펜서(맥주 공급기)’를 잡았다.
업주들의 냉랭한 태도와 노년에 이른 창업주의 흐릿한 기억도 장애물이었다. 섭외를 위해 찾아간 한 노포 주인은 그를 향해 귀신 쫓듯 소금을 뿌리기도 했다. 가장 많이 찾아간 곳은 을지면옥이다. “열 번 넘게 방문했습니다. 입이 떨어지지 않아 냉면만 먹고 그냥 나온 적이 더 많았어요. 네 번째 섭외 요청 때 간신히 ‘오케이’를 받았죠.”
전작인 《백년식당》을 포함해 그가 기록한 노포는 40여 곳, 취재한 기간은 4년이 넘는다. “오래 살아남으려면 맛은 기본이고 운도 따라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한결같음입니다.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음식을 대하는 주인장의 변하지 않는 진심이죠. 저도 취재를 다니며 한식당을 하고 싶어 지난해 문을 연 광화문국밥을 노포로 키우고 싶지만 솔직히 힘들 것 같아요. 하하.”
홍윤정 기자 yj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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