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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 한국의 '외환위기'에서 배우는 中 경제시스템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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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잠들지 않는다

탕야 지음 / 김락준 옮김 / 안유화 감수
쌤앤파커스 / 344쪽 / 1만8000원



[ 윤정현 기자 ]
“돈은 잠들지 않는다(Money never sleeps).”

1987년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월 스트리트’의 주인공 고든 게코의 명대사다. 신간 《돈은 잠들지 않는다》는 급변하는 중국 자본시장의 면면을 보여주기 위해 금융가의 탐욕을 다룬 영화 속 대사에서 제목을 따왔다. 저자인 탕야 중국 베이징대 금융학과 부교수는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서 ‘샹솨이우화(香帥無花)’라는 닉네임으로 더 유명한 젊은 금융학자다. 제일재경일보 등 중국 언론에 발표했던 칼럼을 짜임새 있게 엮었다.

월스트리트의 기원, 홍콩의 경제사 등 금융을 역사라는 거울에 비춰본 도입부에서는 20년 전 한국이 겪은 외환위기에 대한 평가가 눈길을 끈다. 당시 코스피지수는 50% 넘게 폭락했고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200억달러(2017년 말 3893억달러) 아래로 줄었다. 30대 그룹사 중 여덟 곳이 파산했고 33개 은행 중 10개의 주인이 바뀌었다. 저자는 주식시장의 불투명성과 비대해진 은행, 대기업의 비효율적인 투자와 노동시장의 경직성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

하지만 한국 외환위기의 원인과 충격 여파보다 위기를 이겨낸 과정과 전략에 주목했다. 한국은 금융감독제도의 틀을 만들고 은행법 개정, 금융시장 개방으로 대응했다. 기업들은 재무 투명성을 높였고 기술혁신, 문화산업 육성을 통한 산업구조 개혁도 추진했다. 저자는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를 조기 졸업하고 고속성장시대에서 중속성장시대로 넘어갔다”며 “한강의 기적은 위태로웠지만 반성과 개혁으로 위기의 그림자에서 벗어났다”고 평가했다. 그에 반해 중국 경제는 개혁이 필요한 단계라고 진단했다. 성장형 경제체제에서 혁신형 경제체제로 전환한 한국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금융업계가 거울로 삼을 만한 대목도 있다. 2013년 8월16일 발생한 중국 광다증권의 주문실수 사건을 언급한 부분이다. 당시 대량 매수주문이 갑자기 몰려 그날 오전 상하이종합지수가 3분 만에 5.96% 뛰었다. 광다증권 거래시스템 문제라는 소문이 시장에 퍼졌지만 광다증권은 부인했다. 오후 들어 지수는 제자리를 찾았다. 장 마감 후 증감회(證監會)는 이날 급등락 원인이 광다증권 시스템의 이상 거래였다고 발표했다. 결국 피해자는 추격 매수나 매도에 나선 개인투자자들이었다.

최근 삼성증권에서 발생한 ‘팻 핑거(Fat Finger·주식 매매 가격이나 주문량을 실수로 잘못 입력)’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저자는 광다증권이 그 후에도 사고 원인을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거래소의 리스크 통제 시스템에도 구멍이 있었다. 2010년 5월 다우지수가 5분 만에 9.16% 폭락한 시스템 매매 문제를 겪은 미국과 비교된다. 당시 미국 금융당국은 정보 공시 기준을 강화하고 매매에 대한 모든 정보를 제공하도록 시스템을 새로 만들었다. 주가가 급등이나 급락하는 경우 매매를 일시 정지하는 서킷브레이커 제도도 도입했다.

중국 자본의 흐름과 금융시스템을 움직이는 메커니즘을 본격적으로 풀어내면서 저자는 ‘2003년 이후 중국의 개혁이 교착상태에 빠졌다는 것은 보편적인 인식’이라고 인정한다. 목표 설계와 개혁 성과에 치중한 윗선이 늘 한발 앞서 돌을 두드리며 강을 건너는 서민들의 움직임을 놓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알리페이, 위어바오(알리바바의 머니마켓펀드 상품), 마이샤오다이(개인 소액대출)가 시작한 인터넷 금융을 대표적인 예로 꼽았다. 이는 중국인의 생활 속에 조용히 파고들어 중국 금융업 판도를 바꿔놓았다. 저자는 “지도층이 해야 할 일은 낮은 계층이 실천하는 것 중 쓸모없는 것은 버리고 유용한 것은 취해 합법적 시스템 안으로 도입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주식시장 제도와 시스템 문제뿐 아니라 부동산 거품과 인구의 변화, 창업과 혁신의 근원, 주주권과 기업의 지배구조까지 다양한 주제로 중국 자본시장의 틀을 조명한다. 탐욕에 물들고 자본의 야만성과 무정함이 극에 달했던 1980년대 월가와 겹쳐지는 모습, 세계 시장에서 중국 자본이 차지하는 역할과 중국 기업의 미래 성장 방향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시장의 형세를 관찰하고 오랜 역사를 뒤돌아보며 마음이 가는 대로 썼다”고 털어놓는다. 올해는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검든 희든 쥐 잡는 고양이가 최고)으로 시작된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 시행 40주년을 맞는 해다. 다양한 비유와 사례를 들어 쉽게 풀어썼지만, 사회주의 틀 안에서 시장경제 개혁을 이어가는 인구 대국의 고민을 담았기에 가볍지는 않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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