흄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필연적이지 않다고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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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지막 장면에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라는 유명한 대사가 나온다. 이 대사는 우리말로 “그래,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라고 의역되면서 맛깔스럽게 표현했 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이 대사의 의미는 현실이 비록 고단하더라도 긍정과 희망을 의미하는 ‘내일’ 을 기약하자라는 뜻이겠지만, 여기서는 약간 의미를 달리하여 영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의 입장에서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라는 말 속에 들어있는 철학적 문제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생활 속에서 ‘내일은 태양이 뜬다’라고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이 말 속에는 흄의 회의론과 관련된 문제가 들어 있다. 만일 어떤 사람이 현실 속에서 문자 그대로 ‘내일은 태양이 뜬다’라는 사실을 의심하며 고민한다면 그는 아마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흄에 의하면 ‘내일은 태양이 뜬다’라는 것은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사실이다. 우리는 그동안 매일 매일 해가 떴다는 사실을 반복하여 경험함으로써 그 사실을 알 뿐이다. 물론 ‘내일은 태양이 뜬다’라는 사건이 예상대로 일어날지는 두고 보아야 할 일이지 원인과 결과, 즉 인과관계 또는 귀납추리로부터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다소 황당하게 들리는 이와 같은 흄의 주장을 이해하려면 흄의 인식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선행하는 인상 없는 관념은 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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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흄의 이러한 인식론은 어떤 지식이 정당한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기준이 된다. 이 기준 앞에서는 경험에 근거하지 않은 어떠한 지식도 힘을 잃게 된다. 이러한 인식론의 바탕 위에서 흄은 ‘동일한 원인에서 같은 결과가 생기게 되며 그런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필연적 연관성을 갖는다’고 보는 인과론을 비판한다. 우리가 원인과 결과의 관계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실제로 관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두 사건이 앞뒤로 연달아 일어난다는 사실뿐이라는 것이다. 그와 같은 사건들의 연속을 지속적으로 여러 번 경험할 때, 우리는 뒤의 사건을 관찰하자마자 그것을 앞의 사건과 연결지어보고 후자를 전자의 원인일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렇다면 흄에게 있어 이처럼 인과관계는 사물에 내재한 것이 아니라 사고의 습관에 불과한 것이 된다.
경험에 기초한 지식만 중시하는 것도 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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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흄처럼 각자 경험에 기초한 지식만을 중요시하면, 가령 오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수학의 관념같이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지식의 근거를 설명할 수 없게 된다. 그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칸트가 등장할 때가지 기다려야만 했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한 칸트가 흄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이 역설적이다. 흄의 회의주의 덕분에 칸트는 자신이 독단에 빠져 있음을 자각하게 되었다며 이렇게 말한다.“흄은 나를 독단의 잠에서 처음으로 깨어나게 해준 사람이었다.”
◆생각해 봅시다
흄에게 있어 이처럼 인과관계는 사물에 내재한 것이 아니라 사고 의 습관에 불과한 것이 된다.
김홍일 < 서울과학고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