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의 여행에세이
따뜻하고 넉넉한 캐나다 사람들
혹자는 촌스럽다 하지만 또 만나고파
[ 최병일 기자 ] 우사인 볼트가 지나갔나?
푸근한 인상의 캐나다 아주머니는 무엇을 발견했는지 세상이 무너지는 얼굴로 부둣가로 뛰어갑니다. 번개처럼 그녀가 달려간 곳에는 한 아가씨가 울상을 짓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다리 한쪽이 구멍 난 부두 펜스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제야 상황이 파악돼 달려가 보니 캐나다에 같이 취재를 갔던 여기자였습니다. 여기자의 한쪽 다리는 부서진 펜스 나무 조각에 심하게 긁혔습니다. 다친 여기자보다 더 참담한 얼굴을 한 캐나다 아주머니는 그녀를 부축하고 자신이 운영하는 카페로 향했습니다. 절뚝거리며 걸어가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캐나다 아주머니 입에서는 안타까운 탄성이 계속 이어집니다.
카페에 들어오니 온기가 느껴집니다. 아주머니는 부지런히 카페 2층으로 올라가더니 구급상자를 들고나옵니다. 광범위하게 긁힌 것에 비해서는 다행스럽게도 심각한 외상은 없었습니다. 그제야 얼굴이 좀 풀린 아주머니는 상처를 알코올로 깨끗하게 닦아내고 외상 크림을 바른 뒤 부드러운 천으로 감아 줍니다. 응급처치가 끝난 뒤 인자하게 웃으며 주방으로 달려갑니다. 향긋한 커피와 토스트를 가져와서 여기자에게 먹으라고 합니다.
그녀를 걱정하고 있던 동료 기자들도 불러서 커피를 한 잔씩 대접합니다. 핏기없던 여기자의 얼굴도 그제야 화색이 돌아옵니다.
“내가 젊었을 때는 엄청 빨랐는데 지금은 잘 못 뛰어요.” 캐나다 아주머니는 자신이 어렸을 적에 육상선수였다고 합니다. 아까 보았던 볼트급의 달리기 실력이 착시는 아니었나봅니다. 하지만 이제는 몸무게가 너무 늘어서 잘 달리지 못한다고 한탄합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여기자의 두 배 정도는 될 만큼 몸집이 컸습니다. 물론 마음씨도 몸집에 정비례 아니 그 이상으로 곱고 순수했습니다.
취재를 위해 떠나면서 사례를 하려고 하니 이내 엄격한 얼굴이 됩니다. 자신이 비록 카페를 하지만 순전한 호의이니 돈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보고 당신은 동료들보다 한 잔 더 먹었으니 그 값은 내고 가라고 농담을 했습니다.
길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캐나다 아주머니는 여기자의 손을 잡으며 남은 일정을 어떻게 소화하냐고 걱정해 줍니다. 마치 어머니가 딸을 걱정하는 그 심정이 그대로 묻어 있습니다.
메리였던가요? 클라라였던가요? 몇 년이 지나고 나니 그녀의 이름이 가물거리지만 방송에서 캐나다와 관련된 풍물을 볼 때마다 그녀 생각이 납니다. 사실 캐나다는 생각 이상으로 풍경이 빼어난 곳입니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같은 남부에서 휘슬러 퀘벡까지 오염되지 않은 아름다운 풍경이 가득합니다. ‘도깨비’라는 드라마에서 보여준 캐나다의 풍경은 100분의 1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풍경 속에 캐나다의 진짜 아름다움은 가려진 것 같습니다. 바로 사람들입니다. 여기자를 치료해준 그 아주머니 외에도 좋은 캐나다 사람을 정말 많이 만났습니다. 동료 중 한 명이 시장통에서 캐나다 단풍시럽을 사다가 지갑을 두고 왔습니다. 1시간이 지난 뒤 지갑이 없어진 것을 알고 낙담하며 찾을 생각을 안 했습니다. 어차피 번잡한 가게에서 지갑이 남아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물론 나조차도 지갑이 남아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가게에 들렀더니 가게 주인이 반색을 합니다. “왜 이제야 왔냐?”고 합니다. 가게 주인은 동양인이 지갑을 떨어뜨리고 갔다며 시장통을 뒤지다가 혹시 다시 가게에 올지 몰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지갑을 찾은 주인은 고마운 마음에 “혹시 단풍시럽을 더 사가도 되겠느냐?”고 하자 가게 주인은 “이미 충분히 사가지 않았냐?”며 사지 않아도 괜찮다고 합니다. 이 사랑스러운 사람들….
모든 캐나다인이 다 그렇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우연히 좋은 캐나다인들을 연속해서 만나는 행운을 경험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누군가는 캐나다 사람들을 멍청하다고 은근히 경멸하거나 무시합니다. 하지만 캐나다 여행을 두 번 정도 하면서 나는 캐나다 사람들의 촌스러움에 반해버렸습니다. 그들은 약삭빠르지도 못하고 어쩌면 일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조금 둔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늘 따뜻한 시선을 가지고 있고 손해를 보더라도 다른 이를 위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캐나다인들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무시하는 마음이 실은 삶을 살아가면서 가장 소중한 자산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 속에서 그 세련된(?) 촌스러움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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