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왼손잡이였다. 글을 쓸 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글자를 좌우로 뒤집어 썼다. 본인만 알아볼 수 있는 이 글은 거울에 비춰 봐야 해독할 수 있었다. 이런 필기 형태를 사람들은 ‘거울형 글쓰기(mirror writing)’라고 불렀다.
왜 그랬는지 설(說)이 분분하다. 왼쪽으로 쓰면 오른손에 잉크가 묻지 않아 좋다는 설, 어릴 때 장난삼아 했던 글쓰기 버릇이 이어졌다는 설 등이 혼재한다. 정상적인 글쓰기도 했다는 점에서 ‘정보 은폐 의도’로 보는 견해도 있다. “우주의 비밀을 담은 것”이라는 소문까지 있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70여 년 뒤 나폴레옹이 유작 노트들을 파리로 가져갔다. 오랫동안 분석한 결과 ‘거울 글씨’의 내용이 판독됐고, 비밀 기록이라는 ‘수수께끼설’은 근거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데도 의문은 남았다. 다빈치의 특이한 글쓰기에는 어떤 심리적 배경이 깔려 있는 것일까.
학자들은 그의 글쓰기를 남다른 발상법과 연관짓는다. 우선은 ‘거꾸로 쓰기’와 역발상법의 연관성이다. 남과 다르게 뒤집어보는 다빈치의 사고법은 그의 예술세계 전반을 관통한다. 지동설이 등장하기 전에 이미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다’고 쓴 그의 우주관도 여기에서 나왔다. 금기로 여겨지던 인체 해부와 자궁 속 태아 관찰도 역발상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그는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지만 끈기는 부족했다. 대형 기마상을 만들다가 금방 신형 대포를 제작하고, 얼마 안 가 새로운 물감을 개발하는 등 딴짓을 했다. 거대한 대리석을 얻고도 쉴 새 없이 아이디어가 밀려오는 바람에 방치하다가 미켈란젤로에게 뺏기기도 했다. 이는 여러 가지를 동시다발적으로 생각하는 입체사고의 한 전형이다.
끊임없는 실험적 사고도 그의 특징이다. ‘최후의 만찬’에서는 기존 방식과 달리 물감을 벽에 칠하고 열로 녹이는 템페라 기법을 도입했다. 이 방식은 디테일한 묘사에 도움이 됐으나 지속성이 없어 결국 색이 바래고 말았다. 그런데도 그의 실험 정신은 그칠 줄 몰랐다.
‘인체비례도’를 그릴 때는 고대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고 사람 몸을 눈금자로 실측하며 완성했다. 기하학적 관점과 수학적 계량화는 자동차·비행선·헬리콥터·잠수함·대포 설계로 이어졌다. ‘위대한 설계자’라는 그의 업적은 이런 사고력의 확장에서 나왔다. 우리 주변에도 거울 글씨에 능한 사람이 있다. 그들을 다시 봐야겠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