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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 칼럼] 피카소의 고양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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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논설위원


파블로 피카소가 추상화가로 막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을 때였다. 한 화가가 자신이 그린 실사(實寫) 고양이 그림을 들고 와 말했다. “애들처럼 마구잡이 그림을 그리다니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난 이만큼 그릴 수 있어요.” 피카소는 그 말을 들으면서 몇 분간 스케치한 뒤 “이런 그림 말입니까?”라며 그와 똑같은 고양이 그림을 그려냈다.

뿌리 없는 나무는 없다. 피카소의 추상화는 하루아침에 나온 게 아니다. 그는 ‘아비뇽의 처녀들’로 입체주의라는 대변혁을 일으키기 전에 구상화 부문에서 최고의 경지에 올랐다. 20세 전에 이미 고전주의를 넘어서는 회화실력을 갖췄다.

2004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1억416만8000달러(약 1113억원)에 팔린 ‘파이프를 든 소년’은 그가 24세 때 그린 유화 작품이다. 몽마르트르의 허름한 작업실에 놀러온 소년을 모델로 한 이 그림은 차가운 청색시대(1901~1904)를 지나 따뜻한 장밋빛 시대(1904~1906)로 넘어가는 시기의 걸작으로 꼽힌다.

그는 이 같은 구상화의 토대 위에서 ‘미술사의 대혁명’이라는 입체주의 시대를 열었다. 그가 26세에 그린 ‘아비뇽의 처녀들’은 회화의 개념을 완전히 뒤집었다. 기존의 평면적 관점을 원형·원측·원구의 3차원적 관점으로 바꾸며 세상을 기하학적 구도로 재창조했다.

그의 추상화는 초기에 혹평을 받았다. 친구들도 고개를 저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입체파는 기존의 미술과 다르지 않다. 똑같은 원칙과 요소를 가지고 있다. 오랫동안 이해되지 않았기에 사람들이 볼 수 없었을 뿐이다. 영어를 읽을 수 없는 내게 영어 책은 백지와 같지만 영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없지 않은가.”

그의 탁월한 감각은 ‘보이지 않는 근원의 존재’를 꿰뚫어 보는 힘에서 나왔다. 다중지능이론의 창시자인 하워드 가드너 하버드대 교수는 이를 ‘훈련된 창의성’이라는 말로 설명했다. 끊임없이 기초를 다듬은 훈련 덕분에 새로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홍성태 한양대 교수도 마케팅 고전 《보이지 않는 뿌리》에서 피카소의 추상화가 탄탄한 구상화 위에서 꽃을 피웠다는 점을 강조했다.

어떤 분야든 바탕이 튼실해야 한다. 죽순이 하루 30~50㎝씩 자라는 것도 땅속줄기에서 5~6년간 축적한 에너지 덕분이다. 내일 피카소 45주기를 맞아 20세기 최고 화가를 키운 젊은 날의 습작기와 청색·장밋빛 시대, 보이지 않는 ‘땅속줄기’의 힘을 다시 생각한다.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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