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삼양식품의 '공업용 쇠기름 파동'이 터졌다. 국민 라면으로 통한 삼양라면에 공업용 쇠고기 기름(우지)이 들어갔다는 소식은 온 나라를 들썩이게 했다. 특히 '공업용'이란 말에 국민들은 사실 여부를 떠나 충격에 휩싸였다.
검찰은 “비누나 윤활유 원료로 사용하는 공업용 수입 쇠기름을 사용해 라면 등을 만들어 시판했다”고 발표했다. 언론들은 연일 삼양라면 사태를 대서특필했다. 국민들은 믿었던 삼양식품에 배신감을 느꼈고 불매운동을 벌였다. 그 결과 삼양식품은 농심에 업계 1위 자리를 내주고 파산 직전까지 갔다.
진실은 8년이 지나서야 밝혀졌다. 대법원 판결은 무죄. 쇠기름을 공업용으로 분류한 건 미국 기준에 따른 것이란 이유에서다. 미국 사람들은 내장과 사골을 먹지 않기 때문에 이를 식용으로 분류하지 않았던 것이다.
삼양식품으로선 뒤늦게 누명을 벗었지만 이미 삼양라면은 위험한 식품으로 각인된 후였다. 국민들은 국가 수사기관과 언론들이 그렇다고 하니 그런 줄 알았을 터. 기자 역시 철썩같이 믿었었다.
최근 삼성의 상황은 삼양라면 사태와 오버랩된다. 국가 기관이 불을 지피면 언론이 기름을 붓는 식으로 특정기업의 부정적 여론이 조장된다는 점이다. 약자의 편에 서고 싶어하는 군중심리가 악용된 것도 닮았다.
검찰은 연일 삼성을 두들기고, 몇몇 언론들은 일일연속극 수준으로 삼성가(家)를 노출시키며 망신준다. 걸러서 듣기 어려울 정도로 그들만의 논리를 펴기도 한다. 법은 나중 일이다.
최근엔 이재용 부회장에서 직접적인 이익을 좌우하는 사업부로 타깃이 바뀌는 분위기다. 일부 언론들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산업재해를 두고 추측들을 생산해내고 있다.
이 사안은 반도체 직업병 당사자들의 처우와 직결되면서 군중심리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삼성 편에 서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엔 '언더도그마(Underdogma) '가 깔려있다. 언더도그마의 오류는 약자의 일방적 주장을 진실로 둔갑시키기도 한다. 강자의 주장은 중요치 않다. 약자들이 들고있는 피켓 속 문구는 이미 진실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귀에도 삼성의 입장은 중요하지 않았다. 고용노동부는 반도체 공장 보고서를 공개하며 산재 피해 당사자도 아닌 한 방송사 PD에게 자료를 넘겼다. 글로벌 기업의 영업 비밀을 만천하에 까발린 것이다. 삼성은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도 모자라 영업기밀 유출까지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삼성전자는 ▲작업장 내 대기 환경분석 내용 ▲사용 화학물질 종류 ▲인력 운용 정보 등 산재를 증명할 수 있는 정보는 모두 제공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경쟁사로 넘어갔을 때 회복하기 어려운 손실을 초래할 정보만 빼달라는데 이조차 호락호락하지 않다. 오죽 답답했으면 반도체 공장의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 공개를 막아달라는 내용의 행정심판과 소송을 제기했을까.
삼성전자는 직업병에 대한 포괄적인 보상 절차를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 눈에 삼성은 직업병 당사자의 산재 신청을 막기 위해 핑계만 대는 거대한 기업일뿐이다. 삼성 관련 기사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삼성 제품은 안사요"라는 댓글은 맹목적 불신의 좋은 예다.
이러다가 삼성을 잘 모르거나 처음 알게된, 특히 미래를 책임질 아이들의 머릿속엔 "삼성은 그저 나쁜 기업"이라는 이미지만 남을지도 모르겠다. 기자가 지금까지 삼양라면을 꺼리는 것처럼 말이다.
이진욱 한경닷컴 기자 showg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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