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용 쓰레기 대란’은 정부가 나서 급한 불은 껐다지만, 우리에게 해결해야 할 근본 숙제를 던졌다. 세계 최대 폐기물 수입국가였던 중국이 “더 이상은 안 받겠다”고 선언한 만큼, 폐기물 자체를 줄이는 일이 급선무가 됐다. 무엇보다도 ‘제품 과대포장형 생활방식’을 바꾸는 일이 시급해졌다.
재활용 쓰레기가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1인 가구와 홈쇼핑 이용, 택배수요 급증 등과 관련이 깊다. 작은 물건 하나 배송받아 포장을 뜯으면 비닐, 플라스틱, 스티로폼, 상자 등 재활용 폐기물이 수북이 쌓이는 게 보통이다. 우리나라의 연간 1인당 비닐, 플라스틱, 스티로폼 소비량은 50㎏에 달한다. 이대로 가다간 1950년대부터 2010년까지 20배 증가한 플라스틱 사용량이 2050년까지 다시 20배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제품 포장방법 기준 등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제품 종류에 따라 65~90%를 내용물로 채워야 하고, 포장은 2회 이내여야 한다. 과대포장을 막기 위해서다. 적발되면 최대 300만원 과태료가 부과된다. 하지만 일일이 점검하기 쉽지 않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적정 이상의 포장은 환경오염 등 폐해를 낳을 뿐만 아니라 재료비 증가로 인해 그만큼 소비자에게 경제적 부담을 안기기도 한다.
제품 과대포장은 우리 사회의 허례허식, 체면문화가 낳은 한 단면이라는 지적도 있다. 압축적인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부의 과시를 통해 존중받고 싶어하는 문화가 생겨났다는 게 소비자 심리를 연구해 온 김주호 명지대 교수의 분석이다. 과대포장도 이런 허세를 중시하는 우리의 잘못된 인식이 낳은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실리를 중시하는 서구와 달리 한국은 체면문화가 상대적으로 강해 제품의 실질보다는 브랜드 이미지, 다른 사람들의 시선 등 외부적인 요소가 제품 구매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는 조사도 있다. 상대방에게 성의를 표시하기 위해서라도 과대포장하는 경우가 많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과대포장이 마케팅의 한 수단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됐다.
우리사회의 정신적 풍토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공방은 자극적이고 즉흥적으로 흐르기 십상이다. 객관적이고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자신의 주장을 펴지 않고 권위와 감정을 앞세우거나 흑백논리에 얽매이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깊은 성찰적 지식보다는 ‘포장적 지식’이 판을 친다.
국가현안에 대한 합리적이고 진지한 밤샘 토론 문화는 찾아보기 어렵다. 정치학자들은 이를 두고 ‘디노크라시(dinocracy·소음민주주의)’라고 한다. 생활폐기물 못지않게 경계해야 할 것이 이런 체면문화와 ‘포장적 지식’이 아닐까.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