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세계 곳곳이 온통 초록색으로 물드는 ‘성(聖) 패트릭의 날(St. Patrick’s Day)’이다. 아일랜드에 가톨릭을 전파한 수호성인 성 패트릭(386~461)이 세상을 떠난 날이다. 패트릭 성인은 기네스맥주, 클로버와 함께 아일랜드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그는 16세 때 켈트족 해적에게 납치돼 아일랜드에서 노예 생활을 했다. 간신히 탈출해 가톨릭 사제가 돼, 432년 자신이 죽을 고비를 넘겼던 아일랜드로 전도하러 되돌아갔다. 당시 로마교회는 다신교를 믿고 있던 거친 켈트족에게 전도가 불가능하다고 봤다. 그러나 패트릭 성인은 켈트족 성향에 맞게 성경 인물들의 무용담을 들려주고, 소탈하고 친근한 자세로 사람들을 감화시켰다. 핵심교리인 삼위일체를 세 잎 클로버를 이용해 쉽게 설명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녹색과 클로버는 그의 상징이 됐다.
아일랜드인들의 성 패트릭 사랑은 기나긴 고난의 역사에 기인한다. 800년 넘게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으며 착취와 가난 속에 살았다. 그 절정이 1840년대 감자대기근이다. 주식인 감자에 역병이 돌아 당시 인구 800만 명 중 200만 명이 굶어죽거나 이민을 떠났다.
19세기 말에는 미국으로 대거 이주했다. 가난한 소작농들에게 드넓은 미국은 ‘기회의 땅’이었다. 영화 ‘파 앤드 어웨이’에서 말을 달려나가고, 타이타닉호의 밑바닥 3등칸을 가득 메운 이들이 아일랜드인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아일랜드인은 ‘흰 니그로(white nigger)’로 불리며, 고된 일을 도맡아야 했다. 그럴수록 패트릭 성인에게 더욱 의지했을 것이다.
오늘날 미국 내 아일랜드계는 3300여만 명(10.4%)으로 독일계(14.4%) 다음이다. 주류 사회에도 당당히 진입했다. 존 F 케네디, 로널드 레이건, 부시 부자(父子), 빌 클린턴 등이 아일랜드계로 알려져 있다.
성 패트릭 축제는 1737년 미국 보스턴에서 처음 시작됐다. 1798년 아일랜드 반란 때 병사들이 녹색제복을 맞춰 입고 행진하면서 거리 퍼레이드도 생겨났다.
성 패트릭의 날을 맞아 미국 뉴욕을 비롯해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남아공, 아르헨티나 등 아일랜드계가 많은 곳마다 성대한 축제가 열린다. 녹색 맥주, 녹색 빵과 클로버 모양의 쿠키가 등장하고, 시카고에선 강물을 녹색으로 물들인다.
마침 주말을 맞아 서울 신도림역에서 기념행사가 열린다. 부산 광안대교도 오늘밤 초록빛으로 변한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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