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익 국제부 기자) 지난 15일 일본 도쿄도 후추시 도요타 후추스포츠센터에 특이한 모습의 농구선수가 등장했습니다. 키 190㎝에 등번호 70을 달고 나타난 이 선수는 일본 프로농구 ‘B리그’에서 활약하는 앨버크 도쿄 선수들과 슈팅 대결을 벌였는데요. 이 선수는 사람이 아니라 인공지능(AI) 로봇이었습니다.
이 로봇의 이름은 ‘큐(Cue)’로 유명 농구만화 슬램덩크의 주인공 사쿠라기 하나미치(한국명 강백호)를 모델로 만들어졌습니다. 큐는 앨버크 도쿄 선수 2명과 함께 자유투 정도 되는 거리에서 슈팅 대결을 벌였습니다. 큐는 10개를 시도해 모두 성공했지만 프로선수팀은 6개째에서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최종 점수는 10대 8. 큐는 무릎의 움직임과 손목 스냅 모두 프로선수 못잖은 자연스러운 실력을 뽐내 대결을 지켜본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냈습니다.
이 재밌는 농구 로봇은 도요타자동차 기술진 17명이 개발했습니다. 자동차회사 연구진이 뜬금없이 왜 농구 로봇을 만들었을까요? 이들은 기술력을 키울 수 있는 업무 외 활동의 일환으로 ‘자동차 말고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보자’며 의기투합했습니다. 팀원 중에 슬램덩크의 팬이 있어서 슈팅 로봇을 만들게 됐다고 하는군요.
기술진 중 한 명인 쓰지모토 다카요시씨(34)는 “AI나 로봇 관련 지식을 가진 사람이 없어 기초부터 시작했다”며 “AI 문헌을 읽거나 인터넷에서 자료를 모아가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농구로봇 큐는 2~4m 거리에선 완벽한 정확도를 자랑합니다.
큐는 지난해 11월 아이치현 도요타시에서 열린 지역 교류 행사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지만 이후 특별히 쓸 일이 없어 창고에 잠들어 있었습니다. 다행히 앨버크 도쿄의 후원사인 도요타자동차 관계자가 큐를 마음에 들어해 팀원으로 영입하게 됐습니다. 큐는 오는 28일 도치기 브렉스와의 홈경기 하프타임에 등장해 팬들에게 인사할 예정입니다.
언젠가 큐 같은 농구 로봇이 실전에서 사람과 겨룰 날이 올까요. 앨버크 도쿄에 슬램덩크의 채치수 같은 선배가 있다면 “아직 부족하다!”며 혼날지도 모르겠습니다. 큐의 슈팅은 완벽하지만 케이블로 연결돼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리바운드도 할 수 없습니다. “골밑을 지배하는 자가 게임을 지배한다”고 가르쳤던 채치수 주장에게는 아직 한참 멀었네요. (끝) /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