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북·미 정상회담 '기싸움'
핵시설 중단 등 북한에 기존약속 공개 요구한 듯
트럼프는 연일 낙관…"가장 위대한 타결 볼 수도"
회담장소도 관심…"판문점 평화의 집 유력 대안"
[ 워싱턴=박수진 기자 ]
미국 백악관이 지난 9일 “구체적이고 검증 가능한 조치를 볼 때까지 (북·미 정상 간) 만남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회동 제의를 전격 수용한 지 하루 만이다. 전문가들은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본격적인 ‘밀당(밀고 당기기)’이 시작됐다”고 해석했다. 5월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기까지 시간, 장소, 의제 등을 둘러싼 지루한 신경전이 시작됐다는 의미다.
◆샌더스 ‘구체적’ 9차례 강조
새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우리는 북한의 말과 수사에 일치하는 구체적인 행동을 볼 때까지 이 만남을 하지 않을 것”이라며 “구체적이고 검증할 수 있는 행동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조금의 양보도 하지 않았지만 북한은 몇몇 약속을 했다”며 “이 만남은 북한이 해온 약속들과 일치하는 구체적인 행동 없이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구체적인(concrete)’이란 단어를 9차례나 썼지만 그게 뭘 말하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백악관을 찾아온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게서 김 위원장의 △비핵화 협상 의지 △핵·미사일 도발 중단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양해 약속과 함께 회동 제안을 전달받자 즉석에서 “5월까지 만나고 싶다”고 답했다.
워싱턴 외교가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격 수용 후 하루 만에 ‘구체적 행동’을 요구하는 발언이 나오자 백악관 기류가 하루 새 부정적으로 바뀐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9일 오전 백악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준비회의를 처음 열고 정상회담 개최 시기와 장소, 의제 등에 대해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그 후 샌더스 대변인 발언이 나온 것이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백악관이 비핵화 의지 표명 등의 ‘말’이 아니라 핵시설 가동 중단 등 실질적인 행동을 조건으로 내건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백악관 관계자는 로이터통신에 “대화를 위한 새로운 조건을 설정하려 한 게 아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백악관이 새로운 조건을 원하기보다 대화에 나서기 전 북한이 한국 정부를 통해 약속한 내용을 직접 공개적으로 천명하라고 요구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정 실장도 10일 귀국길에 오르기 전 기자들을 만나 백악관이 언급한 ‘구체적인 행동’에 대해 “들어본 바 없다”며 “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들은 바를 전한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사흘간 ‘낙관론’ 전도
북·미 정상회담 조건 등을 놓고 논란이 번진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낙관론을 쏟아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일 펜실베이니아에서 열린 한 공화당 하원의원 지원유세에서 “북한이 적대 관계를 청산하는 화해를 원한다고 본다. 이제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 세계 국가를 위해 가장 위대한 타결을 볼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북한과의 합의가 정말로 이뤄지는 과정에 있다”(9일) “북한이 지난해 11월28일부터 미사일 도발을 하지 않고 있다. 그들이 (핵·미사일 도발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리라 믿는다”(10일)고도 썼다.
아프리카를 순방 중인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9일 기자회견에서 “이제 문제는 첫 번째 만남의 시간과 장소를 정하는 것”이라며 “이런 내용을 정하는 데만 몇 주는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국무부 고위관리는 회담 장소에 대해 “가장 확실한 장소는 판문점 평화의 집”이라며 판문점에서 이뤄질 가능성을 시사했다. 평화의 집은 판문점 내 한국 측 지역에 있는 건물이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이날 워싱턴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양측 실무접촉이 시작될 것으로 본다”며 “양측의 특사 파견 및 고위인사 접촉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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