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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칼럼] 해고 고통 없는 구조조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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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외환위기 이후 손 놓은 기업 구조조정
기업활력 저하 및 금리인상으로 경제 시름 더 깊어지기 전
정치논리 철저히 배제하고 좀비기업 정리 나서야"



셰익스피어 희곡 《베니스의 상인》의 절정은 채무를 이행하지 못할 경우 살 1파운드를 떼어 내기로 한 부채계약을 명(名)판결로 파기시킨 것이다. 살 1파운드를 떼어 내되 피는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붙인 것이다. 이 부채계약 판결을 경제에 적용하면 피를 묻히지 않고 수술할 수 없듯이 ‘인력 감축 없는 구조조정은 불가능하다’가 된다. 구조조정은 인적·물적 자원을 재배치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고통을 수반한다.

국가 정책은 기업 전략보다 더 합목적 적이고 합리적인가. 정책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익에 따라 이해 중립적으로 시행돼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정치논리가 개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책의 질이 기업 전략보다 오히려 낮을 수 있다.

만약 어떤 기업이 최근 3년간 내리 마이너스 매출성장률을 기록하고 매출 대비 인건비 비중이 한계에 도달했다면 그 기업은 ‘비상 경영계획’을 세우고 구조조정에 들어갔을 것이다. 여기서 ‘어떤 기업’은 유감스럽게도 ‘한국 경제’다. 한국은행 기업경영 전수조사에 따르면 제조업 매출증가율은 2015년 이래 3년간 -1.59%, -2.99%, -0.47%를 기록했다. 총매출 대비 인건비 비중은 9.91%, 10.84%, 11.19%로 증가했다. 과다 고용이 이뤄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못 갚는 ‘한계기업’ 비중이 2016년에 32.3%를 기록했다. 중소기업으로 범위를 좁히면 그 비중은 41.6%로 올라간다.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2017년 72%로 낮아졌다. 성동조선과 STX조선 부실이 드러나면서 비로소 경고음이 울린 것이다. 올해 미국은 최소 세 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예측된다. 금리 역전을 막으려면 우리도 금리를 올려야 한다. 그러면 기업 부실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그동안 한국은 엄밀한 의미에서 외환위기 이후 제대로 된 구조조정을 한 차례도 하지 않았다. 구조조정은 인력 감축을 수반하기 때문에 구조조정에 소극적이었다. 경제 효율을 높이는 구조조정이 아닌 ‘재무적 보강’은 구조조정일 수 없다. ‘좀비기업’이 움켜쥔 자원이 방출돼야 경제의 신진대사가 이뤄진다.

성동조선과 STX조선을 보자. 업황이 좋을 때 두 조선소는 잘나갔다. 성동조선은 2007년엔 수주 잔액이 세계 8위였다. STX조선도 2008년엔 수주 잔액이 세계 4위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현실에 안주했다. 두 조선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한파와 중국 조선사의 저가 공세를 이겨내지 못했다.

성동조선은 2010년 채권단 자율협약 체제에 들어간 이래 현재까지 9조6000억원(신규 자금 2조7000억원, 보증 5조4000억원, 출자전환 1조5000억원)의 금융 지원을 받았음에도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STX조선도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 등이 7조9000억원(여신 1조원, 출자전환 6조9000억원)을 쏟아부었지만 지난 2월 기준으로 가용자금은 1475억원에 불과하다. 좀비기업이 따로 없다. 성동조선보다 상대적으로 형편이 나아 회생 기회를 얻은 STX조선도 전도가 가시밭길이다. 법정관리 판정을 받은 성동조선은 신규 수주가 여의치 않아 청산 과정을 밟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국책은행이 퍼부은 금융 지원은 매몰비용이 되고 말았다. ‘조선 경기가 회복되면 재도약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낙관이 구조조정을 실기(失機)하게 했다. 설령 조선 경기가 회복된다고 하더라도 이미 경쟁력을 잃은 중소 조선사에 기회가 올 가능성은 작다. 재무보강이라는 ‘산소호흡기’로 부실기업의 수명은 다소 길어질지 모르지만 산업경쟁력은 더욱 낮아진다. 그런 점에서 성동조선의 법정관리는 옳은 결정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작년 12월 구조조정 추진 방향으로 “부실 예방과 선제적 경쟁력 강화, 시장 중심의 구조조정, 금융·산업적 고려의 균형”을 제시했다. 하지만 총론에 지나지 않는다. 구조조정이 구두선(口頭禪)에 그쳐선 안 된다. 구조조정에 정작 필요한 것은 ‘노조의 기득권 포기, 인원 감축, 노사 간 손실 분담’ 등의 원칙이다. 또 회계법인의 엄정한 실사와 국책은행의 방만한 금융 지원을 막을 장치를 강구해야 한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경제학, 객원논설위원 dkcho@m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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