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가로막는 기득권 벽을 깨자
(1) 사회 곳곳 기득권 먹이사슬
편의점 상비약 늘린다고 자해
카풀앱 토론장 점거 택시업계
[ 임도원 기자 ]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2월4일 편의점에서 판매할 수 있는 상비약 가짓수를 늘리기 위해 ‘안전상비약의약품 지정심의위원회’를 열려다 철회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대한약사회 간부가 상비약의 편의점 판매 확대에 반대하며 자해를 시도했기 때문이다. 대한약사회 소속 약사 수십 명은 이날 새벽부터 회의가 열리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서울사무소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복지부는 이후 안전상비약의약품 지정심의위원회를 열지 못하고 있다.
기득권 타파를 위한 개혁이 강한 저항에 부딪혀 지연되거나 무산되는 경우가 잇따르고 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월 언론사 간부들과의 토론회에서 “진입장벽을 허무는 과제의 100%는 기득권 반발 때문에 안 된다”고 언급한 사례들이다. 기득권을 조금이라도 잃을 것 같으면 머리띠를 두르고 확성기를 켜거나 극단적인 행동까지 서슴지 않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지난해 11월20일 국회에서 열린 ‘스타트업 규제개선 정책토론회’는 카풀 앱(응용프로그램) 서비스 ‘풀러스’에 강력 규제를 요구하는 택시업계 단체들의 단상 점거로 중단됐다. 카풀 앱 규제가 과연 필요한지, 고쳐야 할 낡은 규제인지에 대해 토론조차 하지 못했다. 서울시도 택시업계 반발에 같은 달 22일 열 예정이던 ‘카풀 서비스 범사회적 토론회’ 개최를 연기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지난해 12월 변호사에 대한 세무사 자격 자동 부여를 폐지하는 세무사법 개정안이 통과되자 집행부가 삭발하고 거리투쟁에 나섰다. 변호사들은 지난 56년 동안 세무사 시험을 별도로 치르지 않고 세무사 자격을 부여받았다.
기득권층은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대통령 뜻까지 거스르기도 한다. 2008년 정부는 규제혁신을 위해 공무원 면책 제도를 추진했다. 규제개혁을 추진하다 예기치 않은 문제가 생겨도 공무원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제도다. 청와대에서 열린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곧바로 시행하라”는 대통령 지시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공직사회의 대표적 ‘기득권’으로 지적되는 감사원은 일선 부처에 대한 감사권한 약화를 우려해 제도 시행을 차일피일 미루다 2015년 법제화했다.
정부 관리·감독을 받는 공기업도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실력 행사에 나선다. 한국가스공사 노동조합은 지난 1월 정승일 신임 사장의 출근을 2주 넘게 저지했다. 정 사장이 산업통상자원부 재직 시절 한국가스공사가 국내에 독점 공급하고 있는 액화천연가스(LNG)의 민간 직도입을 추진한 전력을 문제 삼았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머리띠를 둘러매는 일은 일상에서도 다반사로 일어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관광 활성화를 위해 2016년 선상카지노에 내국인 출입을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강원랜드 수익성 악화를 우려한 강원도 폐광 인근 지역 주민들의 시위로 철회했다. 거주 지역에 비(非)선호시설이 들어서지 못하도록 막는 사례도 줄을 잇고 있다. 지난해 7월 서울 강서구에 장애인 특수학교를 설립하기 위해 마련된 토론회가 지역 주민 반발로 무산된 데 이어 10월에도 강원 동해시에서 특수학교 설립 토론회가 같은 이유로 불발됐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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