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민 IT과학부장
‘파괴적 혁신론’으로 유명한 클레이튼 크리스턴슨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석좌교수는 명저 《혁신기업의 딜레마》에서 위대한 기업들의 실패 과정을 이렇게 분석했다. “회사를 몰락으로 이끈 결정들은 회사가 가장 주도면밀하게 경영되면서 폭넓게 인정받고 있을 때 내려졌다.” 과거 수십 년 동안 미국 최우수 유통업체로 인정받았지만 할인매장의 부상을 무시하다가 걷잡을 수 없는 추락의 길로 빠져든 시어스로벅을 그 예로 들었다.
크리스턴슨 교수의 기업 해부 리스트에 오를 만한 곳이 또 하나 나타났다. 모든 기업이 다 망해도 끝까지 살아남을 것 같던 미국 기업의 상징 제너럴일렉트릭(GE)이다. 지난 1년간 미국 다우존스지수는 20% 이상 올랐지만, GE 주가는 거꾸로 50% 가까이 떨어졌다. 증발된 시가총액이 1000억달러(약 110조원)가 넘었다. 전구, 기관차, 헬스케어 사업 등의 매각과 그룹 해체까지 진행되고 있다.
변신을 막는 익숙함에 대한 집착
GE 추락의 1차적인 책임은 지난해 중도하차한 제프리 이멜트 전 회장에게 있는 듯하다. 그가 인수합병에 쏟아부은 비용을 인덱스펀드에 넣어두기만 했어도 수익이 두 배가 됐을 거라는 비웃음도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GE 성장의 최대 주역인 잭 웰치 때 이미 비극의 씨앗이 싹트기 시작했다고 분석한다.
그는 재임 초기엔 혁신에 주력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수익의 원천이 금융기법으로 바뀐다. 미국 대공황 시절 소비자 할부금융으로 출발해 항공기 리스, 모기지금융까지 다루는 금융 거물로 성장한 GE캐피털이 최대 수익 창구가 됐다. GE캐피털을 활용해 법인세가 아주 낮거나 없는 나라에 투자하면서 대출이자로 미국 내 사업장 이익을 상쇄해 미국 내 세금까지 최소화하고, 분기 말에 유동성 자산의 매매를 일으키는 방법 등으로 실적을 부풀렸다. 1980~2001년 웰치 재임 시절 GE의 순이익은 여덟 배 가까이 불어났지만, 수익의 질은 회계사 표현대로 ‘격 떨어지는(low-quality)’ 것이었다. 로버트 살로몬 뉴욕대 교수는 GE를 가리켜 “웰치를 추앙하다가 지나간 시대의 유물 같은 회사가 됐다”고 했다.
과거와의 단절이 부활의 출발점
기업이 변신의 골든타임을 놓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익숙하고 달콤한 과거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 유혹을 떨치고 미래를 위해 변화하는 일은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미국 최대 정보기술(IT) 기업이었다가 PC 쇠퇴와 함께 추락의 길을 걷던 마이크로소프트(MS)는 과거와의 단절을 통해 부활의 스토리를 쓰고 있다. MS는 윈도, 오피스 등 존재 이유와도 같던 기존 사업모델을 버리고 애저(Azure)라는 클라우드 사업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지난해 말 17년 만에 시가총액 5000억달러를 회복하면서 애플, 구글에 이어 빅3 자리를 되찾았다.
MS 부활을 이끌고 있는 사티아 나델라 최고경영자(CEO)는 다음달 국내에도 소개될 《히트 리프레시》라는 책 첫 페이지를 냉철한 자기 반성으로 시작한다. “MS는 PC혁명을 일으킨 주역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경쟁 상대가 없었던 탓에 관료주의가 혁신을, 사내 정치가 팀워크를 대체했다. 우리는 낙오했다.”
나델라처럼 GE의 이멜트도 답은 알고 있었다. 그는 2016년 4월 한국을 찾았을 때 “기업 입장에서 가장 하기 어렵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은 과거에 배운 것을 내려 놓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GE의 지금 상황을 보면 그의 말은 반성보다는 후회가 된 듯하다.
smyoon@hank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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