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미국 증권시장이 이틀간 1800포인트 넘게 폭락하며 급제동이 걸리더니, 어제는 아시아 증시가 초토화됐다. 홍콩(-5.12%), 대만(-4.95%), 일본(-4.73%), 중국(-3.35%)의 낙폭이 컸다. 한국은 코스피가 1.54% 하락하고, 코스닥은 보합 마감한 게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질 정도다. 연초 기세등등하던 글로벌 ‘황소장’과 비교할 때 ‘터뷸런스 구간’에 진입한 모양새다.
주요국 증시가 동반 약세로 돌아선 것은 미국 경기가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되고 있어서다. 이에 따라 미국 내 물가 압력이 커져, 금리 인상 횟수와 폭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당장 내달 미 중앙은행(Fed)이 기준금리(현재 연 1.25~1.50%)를 올리면 한국 기준금리(연 1.50%)를 추월하게 된다. 이미 두 나라 국채 금리에서는 역전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달러값 변동에 따라 주요 원자재 가격도 춤을 추고 있다.
여러모로 국제 금융·원자재 시장이 심상치 않다. 시장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부터가 그렇다. 일각에선 미·중 간 통상마찰 여파로 중국이 보유 중인 미 국채를 내다팔면서 금리를 밀어올리고 있다는 분석까지 내놓고 있다. 국제 무대에서 ‘자국 우선주의’가 득세하면서 외교·안보, 경제·통상, 금융이 점점 한 묶음이 돼가는 양상이 뚜렷하다. 이렇듯 큰 흐름의 변화가 감지될 때 경제주체들은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을 돌아보게 된다. 미국은 백악관까지 나서 “펀더멘털은 여전히 이례적으로 강하다”는 말로 진화하고 있다. 미국이 경기 회복의 선순환 흐름을 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외풍(外風)에 취약한 우리 경제는 사정이 다르다. 대내외 상황이 급변할 때마다 허약한 펀더멘털이 부각된 적이 많다. 주가·금리·원화가치의 ‘트리플 약세’에 대한 트라우마도 있다. 반도체 외에는 이렇다 할 캐시카우가 안 보이는 데다, 향후 반도체 업황도 낙관하기 어렵다. 상장사들의 실적 개선세도 주춤해지고 있다. 산업 전반의 체력 보강을 위해 필수적인 구조조정은 더디기만 하다.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한계기업이 3000곳을 넘는다. 이들 기업의 차입총액은 121조원에 이른다. 정부의 경제운용도 생산성 향상보다는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비용유발 정책 일변도다.
이런 판국에 한·미 간 법인세율에 이어 금리마저 역전되면 자본 유출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외환보유액(1월 말 3957억달러)이 사상 최대라지만, 한번 빠지기 시작하면 그 규모는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2008년 금융위기 때 경험했다. 정부는 금융시장 급변에 대처하면서 경제체질 개선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설마’ 하는 사이에 경제 전반을 뒤흔들 블랙스완(예상치 못한 극심한 충격)이 닥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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